▲ 김남호 울산대학교 철학과 객원교수·철학박사

생리학자 벤야민 리벳(1917~2007)이 1980년대 초에 발표한 일련의 논문들은 학계의 큰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가 1970년대에 고안한 실험의 결과 우리가 자유롭다는 믿음은 허구일 수 있음을 암시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소위 ‘리벳 실험’의 방식은 간단하다. 피실험자의 머리에 뇌파를 측정하는 장치를 부착하고, 바로 앞에 놓인 버튼을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된다. 다만, 피실험자는 자신이 버튼을 누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특수한 타이머에서 점의 위치가 어디인지 보고해야 한다. 그리고 그가 버튼을 실제로 누르면 타이머의 점은 자동으로 표기된다. 리벳은 ‘버튼을 눌러야지’라는 생각이 시간상 가장 먼저 나오고, 그후 뇌파가 감지되고, 실제로 버튼을 누르는 사건이 가장 나중에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예상은 우리의 상식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누구나 자신이 뭔가를 하려는 생각을 시간상 먼저 했기 때문에 그 일을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달랐다. 뇌파가 먼저 감지되고, 버튼을 누르려는 생각이 따라 나오고, 버튼을 실제로 누르는 사건이 나온 것이다. 즉, ‘버튼을 눌러야지’라고 생각하기 전에 이미 두뇌가 활동을 한 것이다. 이 시간 차이는 평균 0.5초 정도 된다. 이는 내가 뭔가를 하려는 생각을 하기 약 0.5초 전에 내 두뇌가 먼저 활동함을 의미한다.

리벳 실험은 ‘우리가 자유로운 존재인가’라는 오래된 형이상학적 물음에 다시 한 번 불을 지폈다. 과학의 발전이 형이상학의 문제에 영감을 준 역사적 사건인 셈이다.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학자들은 이 실험 결과를 즐겨 인용한다. 우리가 자유롭다는 생각은 착각이며, 실제로는 물리 법칙에 따르는 물질덩어리인 두뇌 활동의 인과적 결과만 있다는 것이다.

과연 리벳 실험은 자유의지가 허구임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경험 증거인가. 리벳 실험에서 요구된 것은 버튼을 누르는 일이었다. 우리가 살아 가면서 고민하는 선택의 상황이 버튼 하나를 누를지 말지와 같은 종류의 행위일까? 가령, 남녀평등 실현을 지지해야 하느냐와 같은 선택이 버튼을 누르느냐 마느냐와 같은 종류의 행위인가? 리벳 실험은 단순한 행위만을 다뤘으므로 자유의지의 허구성을 보여주기에는 대표성이 부족하다고 봐야하리라. 김남호 울산대학교 철학과 객원교수·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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