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송화(松花)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윤사월’ 전문(박목월)

요즘 울산 인근에는 송홧가루가 눈처럼 날린다. 창문틀에, 자가용 지붕에, 가방에, 머리에 수북수북 쌓인다. 필자가 사는 영남알프스 기슭 등억마을에는 송홧가루가 마치 눈보라처럼 흩날린다.

시 ‘윤사월’에서 윤사월(閏四月)은 4월에 든 윤달을 말한다. 음력은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을 기준삼은 역법이다. 태음력에서는 1년을 354일로 계산하는데 5년에 두 번꼴로 1년에 13개월이 된다. 1년이 13개월이 되는 해를 윤년이라 하고 윤월은 윤년에 드는 달을 말한다. 올해는 오는 23일이 윤사월 1일이다.

박목월의 ‘윤사월’은 서정적이면서도 비극적이다. 송홧가루만 뽀얗게 날리는 산골 외딴 봉오리에 해는 길지만 눈먼 처녀는 이 대낮의 아름다운 풍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적막하고도 권태로운 외딴 산지기 집, 들리는 것은 꾀꼬리 울음 뿐. 눈먼 처녀는 오로지 문설주에 의지해 꾀꼬리 소리를 듣고 있다. 철쭉 꽃 피고 송홧가루 날리는 5월의 풍경은 눈먼 처녀는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더 서정적이고 고독하고 서럽다.

 

“서편제는 말이다. 사람의 가슴을 칼로 저미는 것처럼 한이 사무쳐야 되는데 니 소리는 이쁘기만 하지 한이 없어. 사람의 한이라는 것은 한 평생 살아가며 응어리지는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 한을 쌓는 일이고 한을 쌓는 일이 살아가는 일이 된다…”

1993년 개봉한 영화 ‘서편제’에는 주인공 ‘송화’(오정해 분)가 나온다. 영화에서 아버지 유봉(김명곤 분)은 양 딸 송화에게 혹독하리만치 소리를 시킨다. “이년아! 가슴을 칼로 저미는 한(恨)이 사무쳐야 소리가 나오는 법이여….” 유봉은 결국 송화를 통해 소리의 꿈을 이뤄보겠다며 송화의 눈을 멀게 한다. 눈이 멀어야 진정한 소리의 눈을 뜨게 된다는 지론이었다. 송홧가루 흩날리는 봄날, 송화는 소리를 얻는 대신 눈을 잃었다.

예부터 윤달은 하늘과 땅을 감시하는 신이 자리를 비우는 달이기 때문에 어떠한 불경스러운 일을 저질러도 신의 간섭과 하늘의 벌을 피할 수 있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윤달에는 조상의 묘소를 이장한다든가, 산 사람의 수의를 장만하고, 집 수리나 이사를 하기도 했다. 이재명 논설위원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