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발달단계에 맞는 부모 과업
한국적 특성과 시대적 변화 반영
새로 정비해 부모역할 길잡이로

▲ 박혜원 울산대교수·아동가정복지학

계절의 여왕 5월이다. 신록을 넘어 더욱 싱그러운 녹색의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과 아름다운 봄꽃들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5월이 계절의 여왕인 또 다른 이유는 아름다운 자연뿐 아니라 가족사랑이 꽃피는 기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초유의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사회적 거리를 두기 위해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 행사가 축소되었기에 조용한 분위기에서 가족의 의미와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었다. 특히 요즘처럼 WFH(Work From Home)으로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부모들은 어느 때보다도 가족끼리 배려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으리라.

그런데 우리에게 바람직한 가족상, 부모자녀 관계는 과연 무엇일까?

부모자녀 관계에 대한 연구는 아동학분야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부모 역할의 두 중심축은 애정차원과 통제차원이다. 따뜻한 접촉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애정차원은 신체적,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부모역할의 다른 축은 자녀에게 안전한 울타리를 제공하는 즉 옳고 그름이나 한계를 정해주는 통제 차원이다. 특히 통제란 한계설정(Limit setting)뿐 아니라 한계 내에서의 자율성(Autonomy)을 강조한다.

애정적이면서 동시에 안전한 한계설정을 해주는 부모가 가장 바람직한 부모로 민주적 양육유형의(이하 민주적) 부모라 불린다. 민주적 부모의 자녀들은 자율적이며 성취동기나 사회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에 애정은 부족하고 통제가 높은 부모는 권위적 부모로 이들의 자녀들은 순종적일 수 있으나 자발성이 덜 발달된다. 따라서 비행 등은 낮지만 학업성취는 중간 정도로 보고된다. 반대로 애정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주지만 통제를 하지 않는 허용적 부모도 있다. 놀랍게도 이들의 자녀는 성취도 낮고 도덕성도 낮은 편이다. 애정과 통제가 모두 낮은 유형 즉 방임형 부모의 자녀들 또한 인지, 정서발달이 낮다고 알려져 있다.

애정과 통제의 균형을 지닌 민주적인 부모유형이 바람직한 한편, 부모역할의 핵심은 자녀의 연령에 따라 발달시켜주어야 하는 덕목을 이해하면서 애정과 통제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다. 전생애 사회·심리적 발달을 주장한 에릭슨(Erikson, 1963)은 인간의 생애를 태내기, 영아기(0-2세: 기본적 신뢰감 형성기), 유아기(2-6세: 자율성 형성기), 아동기(6-12세: 근면성 형성기), 청소년기(12-18세: 정체감 형성기), 성인기(18-40세: 친밀성 형성기), 중년기(20-40세: 생산성 형성기), 노년기(60세이상: 통합감 형성기) 등 8단계로 구분하고 각 발달단계에서 이루어야 하는 덕목 즉 발달과업(Developmental tasks)과 과업실패에 따른 위기(Crises)를 제시하였다. 예로 어린 영아들은 앞으로의 긴 인생을 살아가는데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 줄 기본적 신뢰감(Basic trust)을 형성해야 한다. 기본적 신뢰감은 헌신적으로 양육해 주는 부모를 통해 만들어진다. 특히 아이의 기질에 맞춘 양육이 자녀의 신뢰감 형성에 중요하다. 반면 이 시기 동안 신뢰감을 형성하지 못한 영아는 타인과 심지어 자신을 믿지 못하는 불신감(Mistrust)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부모역할은 자녀가 청소년기에 이를 때까지 중요하여 청소년의 부모는 이들의 발달과업인 자아정체감(Identity)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독립심을 연습할 기회를 주는 허용성이 필요하다.

한편 학계에서 오랫동안 인정받아온 이러한 발달단계 구분과 발달과업, 부모자녀관계가 비교적 안정적 사회에서는 보편적인 것이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부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한국만의 독특한 부모자녀관계가 있다. 예로 외국에 비해 한국사회에서는 청소년 심지어 성인 자녀의 독립이 매우 힘든데 이것은 아마도 한국 부모의 자녀돌보기가 지나친 수준이면서 부모 자신이 자녀로부터 독립하기 어렵기 때문인 듯 하다. 또한 급격히 증가하는 만혼-비혼에 따른 중년(부모)-성년(자녀) 부모자녀관계가 만연하고 더 나아가 초고령의 부모를 돌봐야 하는 노년기 자녀가 증가함에 따라 초고령(부모)-노령(자녀) 부모자녀관계 등이 부각되고 있다. 100세 수명시대를 앞두고 한국인의 새로운 발달단계별 발달과업을 정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박혜원 울산대교수·아동가정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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