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옛날, 황룡사에서 시오리를 산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무문관이 나옵니다. 스님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용맹정진을 하는 곳이지요. 무문관 앞에는 한그루 나무가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무문관 안에 들어간 스님이 해탈을 하면 축하라도 하듯 꽃송이를 피워내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이곳에서는 ‘거짓 깨우침’으로 남을 속일 수는 없답니다. 스님들은 이 나무를 해탈나무라 이름 짓고 그 꽃을 해탈꽃이라고 불렀답니다. 불교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국보 제 50호 도갑사 해탈문을 들어서면 이 해탈꽃 이야기가 슬며시 뒤를 따라옵니다. 그래서 태극무늬가 새겨진 석조 계단을 오를 때면 몸자세를 가다듬지요. 모든 번뇌를 벗어던지고 법계로 들어선다는 해탈문을 지나는데 발이 붙어 떨어지지 않습니다. 번뇌의 얽매임도 미혹의 괴로움도 버리지 못한 채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려는 것은 참이 아닌 거짓이니까요. 되돌아서 금강 역사상을 향해 자꾸 머리를 조아립니다.

신라의 고승, 도선국사가 창건한 월출산 도갑사는 많은 문화재가 있는 천년 고찰입니다. 그중 대웅전이 자리한 절 마당에 고려초기에 건립된 보물 제1443호 오층석탑이 있습니다. 오층이라는 제법 큰 규모지만 전체적인 체감률이 자연스러워 한눈에 봐도 산뜻합니다. 오래된 느티나무 한그루가 석탑을 감싸 안고 있습니다. 나무아래 놓인 의자에 앉아 키 큰 탑과 느티나무를 우러릅니다. 누군가를 저렇게 무람없이 보듬어 본 적이 있나 기억도 가물가물합니다. 그런데 탑 앞에 놓인 깨어진 배례석이 자꾸 눈길을 붙잡네요. 흙속에 묻힌 채 삐쭈룩이 얼굴을 디밀고 있는 배례석 위에 하얀 민들레꽃 한 송이를 올립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깨달음도 본디 저러하겠지요.

 

법당에선 사시예불을 올리는 스님의 독경소리가 도량을 가득 채웁니다. 코로나 극복을 위한 발원과 모든 중생들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립니다. 스님의 목탁 소리에 단단한 오층석탑이 오월의 햇살을 받아 한 송이 해탈꽃으로 피어납니다. 비로소 번뇌 하나 끊어 냅니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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