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안전 위해 애쓰는 이들 위해
내몫의 방역 ‘마스크 착용’으로
고통스러운 시기 함께 이겨내야

▲ 황연순 춘해보건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사물을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닌 엉뚱한 곳에 갖다 두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으로 보는 사람의 무의식의 세계를 일깨우고자 했다. 이 기법으로 표현된 작품 중 르네 마그리뜨가 그린 공중에 떠 있는 의자, 접시 위의 눈동자, 살바도르 달리가 그렸던 해파리처럼 늘어진 해변가의 시계, 그가 제작한 밀로의 비너스 조각상 속 서랍, 스키아파렐리가 달리의 작품을 모티브로 해 만든 서랍 슈트, 달리의 작품 속 여성 슈트의 주머니가 된 붉은 입술, 하이힐 모양의 모자와 같은 사물들은 위치가 전환되어 이성이나 미학적 규제나 도덕적 관념에 통제 받지 않고 유폐된 무의식의 세계를 꿈으로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공부하느라 강의실에, 도서관에 앉아 있던 학생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야구장, 축구장에도 관중이 보이지 않는다. 수출하려 선착장에 대기시켜 둔 자동차들도 보이지 않는다. 있어야 할 곳에 없는 사람들과 사물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무의식의 세계를 일깨우고자 사물의 위치를 전환시켰지만 코로나19는 마치 우리를 뉴(new)초현실주의의 세계로 위치전환시키고 있는 것 같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바꾼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공공의 이익을 외면한 일부 사람들에 의해 이태원 클럽발 전국적 확산은 우리의 삶을 또 다시 다른 위치로 전환시키고 있다.

또다시 연기된 개학 때문에 지인의 초등학교 1학년 입학생인 딸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얼마나 가고 싶은 학교이겠는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는 새로 사둔 실내화 한 번 못 신어보고 아마도 학교 갈 때쯤이면 또 다시 사야 할 것 같다고 하는 아이 엄마의 말에 코끝이 찡해졌다.

우리는 이런 고통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에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어떤 공간이 존재한다. 우리의 반응에는 성장과 자유가 있다.’라는 글귀에서 그 답을 찾아도 될 것 같다. 이 상황을 자극으로 보고 회복 탄력성을 키울 수 있는 반응으로 만들 자유가 있다. 쉽지 않지만 지금 겪는 고통의 시간, 이 시간은 낚시터의 강물이고 그 강물은 단지 지금 얕을 뿐이고 곧 좀 더 깊은 강물을 이룰 때가 올 것이라는 마음도 가져보자.

예를 들어 A는 국세청으로부터 작년에 종합소득세 신고가 잘못되어 60만원을 더 내야 한다는 고지를 받았다. 같은 날 재산세 신고가 잘못되어 30만원을 더 내야 된다는 고지도 받았다. B는 국세청으로부터 작년에 종합소득세 신고가 잘못되어 90만원을 더 내야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누가 더 고통스러운 기분이 클까? A다. 총량이 같을지라도 두 개의 다른 세금으로부터 발생하는 부정적인 감정경험은 하나의 부정적인 감정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러니 코로나19가 물러갈 때까지 확산과 재확산을 분리하지 말고 하나로 통합해서 인식하는 심적 회계 방식의 심리방역도 해보자.

신천지 교도들에 의한 대구·경북지역 대규모 감염, 예천 모자 주변의 수십명 확진, 이태원 클럽발 확진자 발생의 공통점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것이다. 부산클럽 이용 확진자와 관련해서 수백 명을 전수 조사한 결과 확산은 없었고 부산에서 확진된 간호사 주변 1000여명의 접촉자 중 한 명만 확진자로 밝혀진 사례의 공통점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것이다. 내세울만한 백신이 없는 현재로선 철저한 마스크 착용이 그나마 대안인 것은 세계 각국의 사정만 봐도 알 수 있다.

날씨가 더워지지만 나 한명이라도 철저하게 착용해서 내 몫의 방역을 실천하자. 이것이 자신, 가족, 이웃 그리고 우리 사회를 지키는 최고의 방역이고 방역 효율을 강화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5.18 광주민주화항쟁이 일어난 지 40년이나 되었다. 모르고 외면하고 방관한 사이에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분들로 인해 우리는 하나의 대추알처럼 영글어져 온 안녕과 번영, 자유를 누리고 있다.

아울러 코로나19를 물리치려는 방역의 최전선에서 애쓰고 있는 의료진과 정부관계자들의 수고 덕분에 그나마 다른 나라보다 안전하게 이 고통의 시기를 지내고 있다.

역사에 빚 진자들임을 잊지 말고 방역 최전선의 최고 물품인 마스크를 철저하게 착용해 역사에 희생된 사람들과 국민의 보건안전을 위해 수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내 몫의 예의만큼은 갖추었으면 한다. 좋은 세상을 공짜로 바라서야 되겠는가. 황연순 춘해보건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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