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파 스님(세계문화유산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하면 안된다” “불평불만은 일단 시작하면 끝이 없다” 2시간여 이어진 찻자리에서 성파스님이 어려운 시대를 지혜롭게 사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어느 세대든 불평 불만은 끝이 없어
불평 불만만 하다보면 정체성 잃어
삶은 바다위에 배를 띄운 것과 같아
가만히 있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
자신의 인생 개척, 일등 항해사돼야
29일부터 성보박물관서 개인전
한국적 이미지·사찰 옻칠문화 결합
옻칠민화 작품 100여점 선보여

지난 15일 통도사 서운암으로 성파 스님(81)을 봬러 갔다. 인터뷰를 위해 스님을 만난 건 이번이 2번째다. 수년 전 그 때는, 학(鶴)의 고장 울산의 역사와 정체성을 연재(학문화 그 원류를 찾아서)하면서 우리 학춤의 기원을 사찰의 역사에서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6년 만인 올해 ‘스승의 날’에 스님을 다시 찾은 건,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만나 이 악물고 버티듯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한 시대의 어른으로, 정신적 지주로서 울림이 큰 말씀을 들려주실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창간특집 ‘원로에게 듣는다’의 일환으로 우리에게 도움 될 말씀을 잘 듣고 새겨서 독자들과 나누겠다 했더니 대뜸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럴 말 할 자격이 안됩니다. 한평생 사회생활 한 사람이나 가능한 일을. 반장도, 면서기도 한번 해 본적 없는데, 어찌보면 편협하게 살아 온 내 말이 무슨 도움 되겠어요. 잘 모르면서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하면 안 되거든. 비바람을 맞아 본 사람한테 물어야지, 골짜기 안에서 단편으로 살아 온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것 같아.”

그럼에도 도움을 얻고자 스님을 찾아오는 속세의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인터뷰를 갔던 그날도 마찬가지. 이어지는 대화 속에 온갖 주제가 들고 나기를 반복했다. 신기하게도 안갯속 같던 마음이 명료해지다가 위로가 되면서 어느 순간 사라졌던 삶의 용기가 슬며시 되돌아 온 것 같은 마음의 변화가 감지됐다.
 

▲ 작업장에서 전통옻작업에 대해 설명하는 성파 스님.

“가끔 홍기자같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본인 세대가 지금 가장 불행하다고 호소합니다. 자기보다 젊은층은 제멋대로여서 통제가 잘 안되고, 윗세대는 늘 그랬던 것처럼 손에 쥔 걸 절대 놓치지 않으려한다고. 그런데 불평불만은 원래 끝이 없어요. 본인 세대만 그런 게 아니고, 어느 세대 건 마찬가지지. 사사건건 부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사고방식이거든.

흔한 예로 ‘요새 군대가 군대가?’라고 하는데, 지금 군에 가 있는 장정들은 그래 생각안한다 말입니다. 일자리도 마찬가지. 도대체가 눈 씻고 찾아봐도 일할 곳이 없다고 성내는데, 해외에선 일 한번 해보겠다고 한국으로 오잖아. 그런데 이또한 정답이 될 수는 없거든. 사회가 복잡하니 딱 떨어지는 해답이 있을 수 있나. 그러니 ‘말을 하면 오히려 상심하게 되니, 차라리 말을 안하는게 낫겠다’ 이 말 입니다.”

요즘은 정치적 격변기다. 2년전 전국지방동시선거와 이번 총선이 그랬고, 2년 뒤 지방선거 역시 그럴 것 같다. 여기에 코로나로 인해 사회문화경제 모든 시스템도 급박하게 바뀐다. 더이상 예전과 같은 세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도 한다. 이런 와중에 불평만 쏟다가는 이 곳이 어디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어지러운 시대가 될 수도 있다.

“마지못해 한마디를 하자면, 이 세상에 태어나 산다는 건 ‘바다 위에 배를 띄운 것’과 같아요. 바다는 물이야. 물은 능히 배를 띄우기도 하고. 빠뜨릴 수도 있어요. 인생이라는 배는 어차피 운명적으로 떠있거나, 넘어지는 존재입니다. 가만히 있고 싶다해서 그럴 수가 없어요. 왜 바람이 부느냐, 파도가 몰아붙이냐 원망하는데 산다는 게 원래 그런 거라서 이유를 찾겠다해도 찾아지지 않는겁니다. 그러니 마음을 굳건히 해서 물 위에 뜬 배와 같은 인생을 스스로 잘 몰고 가는 일등 항해사가 되는 수밖에 없어요. 마음 먹기가 중요하다는 말이야. 그런데 그또한 쉬운 일이 아니지요. 연습이 중요합니다. 비우고, 채우고, 실천하고, 자제하고…. 세상보는 통찰력을 키우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테니, 이를 꾸준히 찾아서 익히고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겠지요.”
 

▲ 실내 공간 작품들

그래서인지 요즘 사람들은 직장생활 만큼이나 취미와 여가생활에 비중을 둔다. 성파 스님은 지난 2005년 북경 중국미술관에서 한국 국적으로는 최초로 대규모 개인전을 가졌다. 당시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스님의 산수화가 큰 화제가 됐다. 서화는 물론 옻칠, 도예와 같이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작업을 넘나들며 새로운 창작의 세계를 펼쳐간다. 인터뷰 당일에도 삼베와 옻칠 작업으로 만들어 진 재료들이 옹기와 캔버스 등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원래부터 울타리나 벽 자체를 안 두고 살아왔습니다. 내 정신과 생각은 아무리 쇠통으로 잠궈놔도 나갈 수 있고 다시 들어올 수 있어요. 속세에서는 가정, 직장, 취미, 여가 등등 구별을 하는 지 몰라도 나는 그렇지 않아요. 본업이다, 부업이다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간혹 언제부터 옻칠이나 민화, 도예 등을 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질문하면 대답을 못합니다. 처음이 언제인지 가늠이 안되고 딱히 그 걸 삶과 떼어내 딱 잘라서 언제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얼마 안됐다’ 정도로만 대답합니다. 수행이자 생활이자 예술이자 일상이라는 말 입니다. ”

수행자의 길을 한평생 걸어 온 스님은 여든을 넘긴 나이에 통도사 내 성보박물관에서 개인전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는 29일 오후 3시 기념식을 시작으로 다름달 28일까지 한달 간 평면 옻칠 민화 작품을 전시하는 ‘통도사 옻칠민화 특별전’이다.

“동양화, 중국화가 있는데 비교적 최근 분류돼 나온 한국화하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 민화가 한국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민화는 불화에서 시작됐다는 지론을 갖고 있습니다. 민화라는 말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민화는 우리 생활 속에 있었습니다. 다행히 통도사에는 훨씬 이전에 그려진 벽화나 문양 속에서 우리 민화를 느끼게 하는 흔적이 많습니다. 지금도 직접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지요. 옻칠민화는 민화의 한국적 이미지와 사찰의 옻칠문화를 결합시켜 만든 새로운 장르 입니다. 한 100여 점 이상 소개할 예정입니다.”

성파 스님은 전 조계종 종정 월하 스님을 은사로 1960년 통도사로 출가 해 1971년 통도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총무원 사회부장과 교무부장을 지냈다.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소임을 맡았으며 제5·8·9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다. 2018년 봄, 통도사 방장(선원 율원 강원 등을 갖춘 대형사찰의 가장 큰 어른)으로 추대됐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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