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은 새로운 꿈 향한 출발이 돼야
떠난 뒷자리가 깨끗이 잘 처리되도록
매일매일 습관적으로 주변 정리하길

▲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이사관)

21대 국회가 곧 개원된다. 국회에 입성할 당선자들은 임기가 개시되는 5월30일을 무척 설레면서 기다릴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일을 잘 처리하는 자에게 모든 것이 온다’는 토마스 에디슨의 말이 있다. 인생 자체가 기다림인 것 같다. 태어날 자식을 기다리고, 그 자식은 생일을 기다리고, 첫사랑을 기다리며, 입학과 졸업을 기다리다가 취업하고, 결혼을 기다린다. 그 자식도 부모가 되어 태어날 자식을 또 기다린다.

군대에서도 많은 병사들은 제대할 날짜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병장들은 자기만의 달력에 전역일자를 적어두고 하루가 지날 때마다 차곡차곡 x자를 그어나간다. 병사들의 희망이요, 하루하루 즐거움이다. 필자가 위관 장교일 때는 그런 병장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전역하는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보이라고 소리쳤다. 철학자 스피노자가 말한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명언을 들먹이면서. x자를 긋는 행동은 마지못해 하루를 버텨나가는 소극적인 행동으로 비쳤었다. 전역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또 그렇게 해야만 별 잡념도 없이 정신없이 시간도 잘 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전역을 앞둔 단기 장교들도 마찬가지로 숙소에 있는 달력에 x자 표시를 하고 있었다. 나라에 충성을 다짐하는 장교 선서문을 낭독했던 그들도 전역의 기다림은 이렇게 목마른 것이었다.

필자가 대대장이 되었을 때쯤에야 이들의 행동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오죽 답답하면 저럴까. 이들도 언젠가는 군대를 그리워할 때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전역 후 취업과 복학 등 불안정한 미래에 풀어야 할 일들이 엄청나게 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무를 수행하면서 지장을 줄 정도로 나태하거나 잘못하지 않는다면, 전역 전 자신의 진로에 대해 준비하는 과정은 나쁘다고만 볼 수도 없다. 오히려 현실 인식이 명확하게 되는 장점도 있다. 명예를 존중하는 이들은 마지막까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어렵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서도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적성에 맞지 않다고 또 다른 길을 선택한다. 그럴 수도 있다. 회사 생활이 힘들 때 한 번쯤은 말년 병장들이 그러하듯 하루하루 x자로 표시하면서 지워나간다면 어떨까? 남은 일정이 갈수록 줄어든다면 혹시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지 않을까? 아쉬움에 하루하루를 더 보람차고 의미 있게 보내지 않을까?

오늘도 정말 답답하고 힘들다는 느낌이 든다면 10년이든 20년이든 먼 훗날 나의 퇴직일을 미리 정해서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퇴직 일자를 D데이로 잡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하는 날을 D데이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함께 싹틀 수 있다. 새로운 기회의 순간을 맞이할 기쁨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물론 어떤 이에게는 퇴직이 곧 새로운 출발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희망에 부푼 자가 떠난 뒷자리는 깔끔해야 한다. 꿈이 있는 사람들은 남에게 어떤 피해도 주기 싫어한다. 어떤 이들은 떠나고 난 자리가 무척 지저분한 경우도 있다. 그런 이들이 막상 떠나고 나면 온갖 좋지 않은 비난들이 터져 나온다. 어떤 이들은 다시는 보지 않을 듯이 화풀이를 하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 퇴직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떠난 뒷자리는 깨끗하게 잘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마치 훈련을 마치고 복귀하는 군인들이 주변 전장 정리를 깨끗하게 해 놓고 떠나듯이 해야 한다. 매일매일을 그렇게 습관적으로 뒷자리를 정리한다면 그가 떠난 뒷자리는 항상 아름다울 것이다.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이사관)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