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두 개의 거대한 바위가 금방이라도 싸울 듯이 마주 노려본다 하여 이름 붙은 쟁계암(爭鷄岩)이 우뚝하다. 10m가 넘는 이 바위 문을 지나면 금곡사 영역이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시비가 제일 먼저 나그네를 맞이한다. ‘양편에 바위 우뚝 솟아 다투는 줄 알았더니, 물줄기 한 가닥으로 흐르는 걸 보니 근심 사라지네.’ 두 바위의 화해를 담은 재치 있는 시다. 그러고 보니 계곡의 물줄기가 청량한 소리를 내며 흘러내린다.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금곡사 주변은 강진이 자랑하는 절경 중의 하나다. 절집을 오르는 길이 고즈넉하여 근심도 아픔도 내려놓는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절집은 모습이 바뀌고 주위 풍경도 변했다. 그러나 보물 제829호 금곡사 삼층석탑은 제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고려 초기에 세운 이 탑은 지붕돌 모서리며 몸돌의 여러 곳이 갈라지고 깨어져 나갔지만 풍모만은 의연하여 부처의 자비가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두툼한 일층 지붕돌은 6단의 층급받침을 이루고 네 매의 돌로 짜 맞추었다. 2층과 3층 지붕돌도 각각 2매의 돌을 맞춰 올렸다. 지붕돌의 구성에서 백제계 석탑 양식도 보인다. 1988년 해체 복원 공사를 하였는데, 이때 3층 몸돌에서 세존의 진신사리 32과가 발견되어 강진이 존귀한 부처의 나라임을 상기시켜준 귀중한 탑이다.

내가 석탑을 바라보고 석탑이 나를 바라보고 그렇게 한참을 서 있는데 그윽한 차향이 퍼져난다. 절 뒤편에 500년 된 넓은 야생 차밭이 펼쳐져 있으니 부처님 전에 차 공양도 올리나보다. 스님도 찻물을 끓여 다선일미(茶禪一味)로 수행중인지 산 그림자 내려앉은 승방은 적요하다. 보은산 자락을 따라 흘러온 구름이 돌탑위에 슬몃거리며 내려앉자 따뜻한 차 한잔이 그립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 유배 시절, 우리나라 다도를 정립한 다성 초의선사와 교류하며 차와 함께 학문의 깊이를 더했다. 금곡사를 뒤로하고 나도 녹차의 깊은 맛에 빠지고 싶어 ‘다향산방’으로 길을 잡아본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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