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INP중공업 삼척 공장 증설

▲ 울산 동구 방어진에 터를 잡은 INP중공업의 2000년대 초반 모습. 동구 방어진항에는 INP중공업 1·3공장이 위치해 있었으나 2012년 세광중공업(구 INP중공업)이 도산하면서 현재 조선소 부지에는 다른 건물들이 들어섰다.

INP중공업의 삼척 공장 증설 결정은 2000년대 초반 조선업체들의 탈(脫)울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지역의 대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던 INP중공업이 고향인 울산 동구 대신 삼척에 시설확충을 선택한 건 지속됐던 주민 반발과 동시에 다른 지역보다 기업 유치에 소극적이었던 행정이 맞물려 작용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방어진항 터잡은 INP중공업
한때 지역경제 한축 담당
분진·소음 등 주민과 갈등
지자체 행정지원도 소극적
공장증설 해결 못해 속앓이
삼척시 유치에 팔 걷어붙여
결국 향토기업 공장 빼앗겨

◇민원과 소극적 행정이 탈(脫)고향 부추겨

INP중공업의 전신은 1929년 일본인 나카베 이쿠지로가 방어진항에 세운 조선(목선)사인 방어진철공소이다. 당시 방어진항 방파제를 건설하면서 산을 깎아낸 자리에 들어선 방어진철공소는 엔진 제작을 통한 동력어선을 제작하면서 조선 역사에서는 최초의 근대식 목조선 조선소로 분류되고 있다. 해방 이후 일본인들이 떠나면서 자리가 비었다가 1960년대 포경산업이 커지자 현대식 조선소인 청구조선이 들어섰고, 이후 1999년 IMF 사태 때 INP중공업이 새로 설립됐다.

방어진항에 자리를 잡은 INP중공업은 특화된 고부가가치 특수선에 사업역량을 집중하면서 시멘트전용운반선, 심해잠수지원선(DSV), 석유시추지원선 등 대규모 특수선박 유치에 잇달아 성공하며 지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다. 설립 4년만인 2003년에는 7000만달러, 2005년에는 1억달러 수출을 기록하며 중소형 선박 시장에서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리를 굳혀가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랬던 INP중공업이 고향인 동구가 아닌 강원도 삼척시에 공장을 증설한다는 이야기가 나온건 지난 2006년이다. 선박 수주 증가로 시설 확장이 절실했던 INP중공업은 방어진에 부지를 추가로 확보해 공장을 증설할 계획이었으나 주민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다. 당시 INP중공업 공장 중 1공장은 방어진항 가운데 위치해 부두 허리를 잘라놓은 형태였고, 3공장(본사)은 항구의 끝자락인 수산물판매장과 주택가 인근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탓에 이미 공장 증설 이야기가 나오기 전부터 인근 주민과의 마찰이 심한 상태였다.

당시 방어진을 지역구로 3대 동구의원을 역임했던 박학천 일산새마을금고 이사장은 “방어진항은 어항이라 어선 출입이 대부분으로 어촌계·어민회와도 마찰이 심했다. 거기다 3공장 인근에는 주택가가 모여있어 항상 분진과 소음으로 인해 민원이 끊이질 않았다”면서 “INP중공업이 동구 지역 경제에 기여를 하긴 했으나 주민 불편도 상당해 합의점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주민 갈등으로 인해 해상작업이 한 달간 중단되는 등 기존 작업마저 어려움을 겪자 INP중공업은 다른 지역에서 공장을 증설하는 방안 검토에 들어갔다.

◇유치단까지 만든 삼척시와 삼척시민의 유치노력 배워야

INP중공업 공장 증설 소식이 전해진 직후 유치를 위해 소매를 걷어부치고 유치전에 뛰어든 곳이 바로 강원도 삼척시이다. 당시 삼척시는 시멘트업계 불황으로 지역 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시멘트 사업이 잔뜩 위축돼 인구마저 9만여명에서 7만여명으로 2만여명 가량 추락한 상태였다.

지역경제 회생이 절실하다고 느낀 삼척시와 시의회가 나서서 2006년 울산에 위치한 현대중공업과 INP중공업을 방문해 기업 유치에 나섰고,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이 합심해 삼척항 조선소 유치위원회와 유치지원단까지 만들고 기업 모시기에 힘을 쏟았다. INP중공업이 삼척에 공장 증설을 결정한 것도 이런 지자체와 지역의 밀어주기가 있었던 덕분이다. 유치 협의 중 걸림돌이 됐던 안벽작업을 위한 부두 사용 문제를 놓고도 삼척시가 나서서 문제 해결을 도와줬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삼척시의 적극적인 유치 움직임에 사실상 INP중공업의 공장 증설이 확정에 가까워지자 뒤늦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울산시가 당시 국가산업단지 내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나서면서 한 때 삼척시와 울산시의 기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INP중공업은 2007년 세광그룹에 편입됐고, 세광그룹은 계열사인 선박 블록 제조업체 세광엠텍을 통해 삼척시 정라동 구 화력발전소 부지에 블록 공장을 증설했다. 세광엠텍은 공장 준공 이듬해에 규모를 기존 5000㎡에서 1만9000㎡로 4배 가까이 다시 증설하면서 생산량도 2000t에서 3000t으로 확대했다. 고용인원도 300여명에서 600여명으로 늘려, 일자리 부족에 허덕이던 삼척시는 고용창출 효과와 경제 활성화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었다.

이후 INP중공업이 수주 감소와 2008년 키코(KIKO) 사태로 인한 유동성 악화까지 겹치면서 2012년 도산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민원에 대한 갈등 조정 등 울산 지자체의 소극적 대응이 탈울산에 큰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으로 기억되고 있다. 김현주기자 khj11@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