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미옥 호계고 교사

속담에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라다’는 말이 있다. 겨가 냄새 나는 똥보다 더러울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보고 더럽다고 흉을 본다는 것으로, 자기에게 있는 큰 허물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작은 허물을 비웃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는 이 속담에 나오는 ‘겨 묻은 개와 똥 묻은 개가 같은 개일 수 있을까?’하는 다소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두 개의 이모저모를 쓸데없이 생각해 보았다. 두 개의 몸집은 어떨까. 털색은 어떤 색일까, 그 개의 주인은 어떤 사람들일까.

겨를 묻힌 개는 어쩌다 겨를 털에 묻혔을까? 겨는, 벼, 보리, 조 등의 껍질을 가리킨다. 이 곡식은 반드시 껍질을 벗겨내야 먹을 수 있는데 옛날에는 절구에 이런 곡식을 넣고 찧어서 껍질을 벗겨냈는데, 벗겨낸 껍질이 겨인 것이다. 겨는 사람이 먹기는 어렵지만 지방이나 단백질이 많아 가축의 사료나 비료로 쓰였다. 그 가운데 벼의 껍질인 ‘등겨’를 겨울에 소죽을 끓일 때 한 두 바가지 꼭 넣었던 생각이 난다. 옛날 우리 집을 생각하면 등겨가 든 가마니는 늘 외양간 한 귀퉁이에 쌓아 두었다. 겨울을 나야하기 때문이다. 등겨가 들어간 소죽이 끓을 때 나던 그 구수한 냄새, 따뜻한 아궁이, 소가 눈을 반짝이며 입맛을 다시던 장면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겨가 묻은 개는 배를 오랫동안 곯았을 것이다. 몇 날을 기다려도 주인집 양반은 소식이 없다. 참다못한 그 ‘겨 묻은 개’는 외양간에 쌓여있는 등겨 가마니에 코를 박고 허기를 채웠을 것이다. 겨울 추위는 고픈 배를 더 고프게 했을 것이다. 그러니 주인 몰래 주린 배를 채우려 외양간에 있는 소의 먹이를 탐했을 것이다.

부잣집 ‘똥 묻은 개’는 온 몸에 ‘겨 묻힌 가난한 집 개’를 보고 나무랐을 것이다. 어디서 고약한 똥 냄새가 나느냐고, 니 몸에서 나는 냄새 같다고, 어디서 몰래 겨를 훔쳐 먹은 거냐고, 그런 식으로 주인을 배신해도 되느냐고. 안 그래도 주인에게 미안했던 ‘겨 묻은 개’는 스스로의 못남에 몸이 오그라들었을 것이다. 배가 고파 몰래 훔쳐 먹었던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보며, 자기의 삶의 태도가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똥 묻은 개가 나무라는 말에 대해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그대로 듣고만 있었겠지.

긴 시간 닫혀 있는 교실에서 5월27일에 드디어 고2 우리 반 아이들 서른 세명을 만났다. 텅 비어있던 학교가 아이들 소리로 빼곡하게 차올라 오월의 초록처럼 싱싱하게 살아났다. 이를테면, 교실에서 나는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는 같은 개인지 어떤지, 얼굴 마주 보며 얘기를 나누고 싶다. 생각은 이렇게 나눌 때 좀 더 단단해지고 또렷해질 수 있고, 여기에 공부의 뿌리가 내린다고 생각하기에.

신미옥 호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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