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호 울산대학교 철학과 객원교수·철학박사

아파트 경비원의 죽음으로 소위 ‘갑질 현상’이 다시 한 번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인류 지성의 역사는 진보하고 있다. 이는 비단 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철학 분야에도 관찰된다. 우리는 노예의 본성을 지니고 태어나는 인간이 있다고 믿었던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주장한 밀 같은 근세 철학자들이 더 진보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노예의 본성이란 게 생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자 밀은 모든 인간은 고통을 포함하는 불쾌를 피하고 쾌를 추구하려 한다는 점에서 귀족이든 농민이든 동일하므로, 인간은 평등하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철학자 칸트 역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원칙적으로 생각하는 능력과 생리법칙을 거슬러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면, 타인에게도 있다. 내가 이런 능력으로 돌멩이와는 다른 존재라면, 타인 역시도 그러하다. 따라서 타인은 내가 돌멩이를 대하듯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뭔가 다른 존재, 즉 인격체이다.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라는 칸트의 생각은 여전히 우리 문명에 큰 울림으로 남아 있다. 법이 금지하고 있는 모든 범죄 목록들은 근본적으로 타인을 수단으로 대하고 있다. 누군가의 분노, 생리적 욕구, 이기적 욕심 등을 실현시키기 위해 타인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타인은 누군가의 수단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타인은 그 자체로 존엄한 존재인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 이외의 동물은 수단으로 간주되어도 좋은가라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지만, 칸트의 인간 평등사상은 현대 헌법 정신에 녹아 있다. ‘갑질’은 타인을 수단으로 대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갑질’은 타인을 숟가락이나 컵과 같이 필요하면 사용하고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존재로 보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선 법의 개정을 통해 이런 시각이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음을, 교육을 통해서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보여줘야 한다. 김남호 울산대학교 철학과 객원교수·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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