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조금이나 기업 협찬에 의존

정치단체·이익집단화 한 시민단체

명칭에서 ‘시민’ 떼는 것이 마땅해

▲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우리나라에서 시민단체가 공론의 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80년대 후반 진행된 민주화 이후이다. 그동안 정치권력에 억압되어 있던 시민사회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동원과 통치의 대상이었던 시민들이 사회의 중심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들은 사회적 이슈의 발굴과 정책제시로 사회변화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우리나라에서 시민단체로 불리는 조직들은 NGO(Non Governmental Organization), 또는 NPO(Non Profit Organization)를 의미한다. 문자 그대로 비정부기구, 비영리기구를 말한다. 이는 사회문제의 해결이나 시민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데 있어서 정부와 기업의 역할에 한계가 있으므로, 이들을 대체하거나 견제하기 위하여 시민들 스스로 조직을 구성하여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는 것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시민단체의 역할을 설명하는 좋은 사례로, 버려져 있던 철도 폐선을 활용한 공중정원으로 유명한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High Line Park)를 들 수 있다. 이 공원은 뉴욕시가 아니라 ‘하이라인 친구들’이라는 자발적 시민단체가 만든 것이다. 공원의 운영과 관리 모두 이 단체에서 맡고 있다. 재원의 대부분은 기부금으로 충당된다. 만일 정부가 이 일을 맡았다면 관료적 절차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경직된 사업추진으로 다양한 의견 수렴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만일 기업이 손을 댔으면 영리 목적의 시설이 들어서 지금처럼 시민들이 자유스럽게 이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 같이 시민단체는 정부나 기업과 달리 기민하고 융통성 있게 시민들의 공익을 충족시키는 조직운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이른바 ‘시민단체’는 언제부터인가 정치단체 또는 이익집단과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휩쓴 대규모 장외집회에 참가한 대부분의 단체들은 ‘시민단체’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명백히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스스로도 특정 정치진영의 지지세력임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라는 이름으로 정치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들은 장외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외부의 단순한 정책참여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식권력을 이끄는 주도집단의 하나로 그 영향력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역대 정권에서, ‘시민단체’ 출신들이 청와대를 비롯한 주요 정부부서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회의원으로 진출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시민단체’ 중에는 아예 자신들의 정치적 또는 경제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설립·운영되는 것도 상당수가 있다. 겉으로는 ‘시민’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시민단체 경력을 개인적 입신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러한 단체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주지하다시피 시민단체의 가장 큰 덕목은 자발적·독립적인 동시에 공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특정 정치세력의 정치적 활동에 동원되는 단체나, 구성원들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은 시민단체로서 자격이 없다. 또한 시민단체는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특히 재원의 독립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상당수의 우리나라 단체들은 정부 보조금이나 기업의 협찬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을 견제하기는커녕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조직들이 ‘시민단체’라는 명칭을 너무도 쉽게 갖다 붙이고 있다. 이로 인해 터무니없는 조직들이 ‘시민’의 이름으로 마치 정당성을 부여 받은 단체인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특히 언론에서는 앞으로 ‘시민단체’라는 타이틀을 부여할 때 보다 신중을 기했으면 한다.

물론 우리 주변에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시민들의 공익을 수호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시민단체들도 많다. 부족한 인력과 재원,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묵묵히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진정한 시민단체들에게는 존경과 지지를 보낸다. 하지만 이미 정치단체 또는 이익집단화 하여 정부와 기업에 기생하는 무늬만 ‘시민단체’들은 그 명칭에서 ‘시민’을 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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