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철 전 울산시 스피치라이터

어제는 모진 날이었습니다. 내내 힘이 빠져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끊었던 담배도 피웠습니다. 당신의 이름 석 자가 이렇듯 목메는 이름인지 몰랐습니다. 언젠가 날아들 부음이었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애써 믿었습니다. 나흘 전 그날,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그 믿음을 더해주었건만. 허망하고 허망합니다.

세 가지 암조차 이겨냈던 당신이기에 생몰연대가 눈앞에서 완성되는 것을 보아야 하는 오늘은 더 아프고 서럽습니다. 구멍 뚫린 가슴을 달래보려 바람도 없는 새벽 세시 강변에 나갔습니다. 강물도 도시도, 어제처럼 여전했습니다. 야속하리만큼 무심한 강물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는 당신을 작은 거인이라 불렀고, 또 누군가는 불도저라고 했습니다. 더러는 뚝심과 황소고집이라고도 했지요.

저에게 당신은 불덩어리였습니다. 운 좋게 얻어 쬐는 곁불도, 하릴없이 연기만 피우는 군불도 아닌 속까지 활활 타오르는 불덩어리였습니다. 당신의 고향 울산과 시민을 위한 마음은 애정도 열정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차라리 병이었습니다. 사랑도 깊으면 병이 된다더니 당신이 꼭 그랬습니다. 서울에 살면서도 울산에서 발행되는 신문의 광고까지 죄다 읽을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더러 열정이 지나쳐 후임 시장들에게 잔소리꾼 취급도 받았지만, 당신은 끝내 그 병을 고치지 않았습니다. 아니 고칠 마음이 애초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시장님!

참 많은 일들이 강물 따라 주마등같이 흐릅니다. 미역 보퉁이를 옆구리에 끼고 울산광역시 승격을 위해 지리산 골짜기까지 도의원들을 찾아다니던 시장님, 데모대가 던진 날계란을 뒤집어쓰고도 속없이 웃던 시장님이 생각납니다. 막히고 밀리던 길을 뻥뻥 뚫느라 사흘이 멀다 하고 데모대의 항의를 받던 일도 생각납니다. 그 거센 몸싸움을 이겨내고 만든 길을 지금 우리는 거저 생긴 도로로 여깁니다.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 울산 신항을 위해 정치인에게 생명 같은 당적마저 버렸던, 그런 시장이 어디에 있을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온산 쓰레기 매립장 확장공사를 중단하겠다던 선거공약을 번복해, 주민들이 말 그대로 바늘하나 꽂을 틈 없이 들어차 거세게 항의하던 일촉즉발의 읍사무소에서 ‘형님 동생들, 그때는 내가 표 받을라고 했다 아인교’해서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던 시장을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시장실까지 쳐들어온 데모대에게 방문을 활짝 열고 나와 같이 이야기해보자던 그런 시장, 직원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친구를 혼내고, 벌을 받게 했던 그런 시장, 문화도시를 위해 제목도 모르는 교향악 연주를 끝까지 듣던 그런 시장, 당신은 저에게 그런 시장이셨습니다.

긴 출장 때면 어김없이 양말이고 속옷까지 손빨래를 해 호텔방에 널어두던 사람이었습니다. 남의 슬픔에 진정으로 슬퍼하고 기쁨에는 내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당신 친구 허문도 전 장관의 말처럼, 당신은 추위에 떠는 사람들을 위해 눈밭을 헤매며 청솔가지를 주워 다 언 손으로 불을 피워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심완구 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는 말처럼 지갑은 텅 비었어도 마음은 늘 부자였던 당신은 진정 신사였습니다. 그런 당신이었기에 임기 말에 닥쳤던 검찰의 수사는 가혹했습니다. 돈을 주었다는 사람이 돈을 주었다는 날 울산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음이 밝혀졌어도 현실의 법정은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기가 막힌 일이지만, 검찰 수사 때부터 선고까지 5년 넘는 세월을 지켜보고 함께 했던 저는 당신의 진실을 손톱만큼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실의 법정에서 당신은 무죄라고 믿습니다.

몇 번을 생각해도 당신은 불의에는 끝내 굴복하지 않았고, 울산을 위한 일에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시민과 도시가 우선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울산은 신념이고 신앙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시장님!

짧은 여름밤이 물러나고 해가 떠오릅니다. 간밤의 강물처럼 울산의 아침도 여전합니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울산은 이렇게 또 하루를 열고 있습니다. 다시는 당신의 두툼한 손과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던 미소, 따뜻하고 힘찬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서럽지만, 울산 곳곳에 남겨두신 당신의 발자국이 있고 향기가 있어 남은 우리가 외롭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자취와 향기에 기대 울산은 내일도 울산일 것입니다.

뜬눈으로 맞은 이 아침에, 당신의 하나님께서 뜨거운 시간을 살고 소천하신 당신을 따뜻하게 안아주시도록 기도드립니다. 심완구 시장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그 이름 울산과 함께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김종철 전 울산시 스피치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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