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완구 울산광역시 초대시장이 고향 천곡동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그의 생몰연대(1938.7.1.~2020.6.8.)가 괄호안에서 완성형이 됐다. 지난 8일 집에서 고요하게 숨을 거둔 심 전 시장의 시민 영결식이 11일 울산시청 햇빛광장에서 열렸다. 영결식이 열린 아침 잠깐 비가 내렸다가 금세 맑아졌다. 슬픔은 잠시, 찬란히 빛나는 태양 아래로 당당하게 마지막 길을 가고 싶었을 그의 바람이 하늘에 닿았을 것으로 짐작됐다.

심 전 시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특유의 열정과 추진력, 그리고 소탈함을 이야기한다. 울산에 대한 그의 지극한 사랑은 아무도 따를 수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산업수도 울산의 위상을 다지는 밑거름을 놓은 진정한 울산시민의 시장이었다.

울산을 광역시로 승격시킨 다음 광역시다운 환경을 가진 도시로 만들기 위해 도로를 확장하고 교통체계를 개선하는 한편 도시녹화에도 큰 정성을 쏟았다. 문화불모지였던 울산에 울산문화예술회관 개관, 동천체육관 준공 등 문화·체육 인프라를 조성했다. 월드컵 축구경기를 유치하고 문수축구장을 지으면서 호수를 낀 산책로와 분수대, 야외공연장을 조성하고 조경에도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또 SK가 울산대공원을 조성해 기부채납할 수 있도록 했다. 공해도시의 오명을 벗고 자연과 일상이 공존하는 정주여건을 만든 것이다. 신항만 건설과 강동관광단지개발이라는 큰 그림도 그렸다.

1972년 신민당 총재 보좌역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고 김영삼 전 대통령 계열 민주화 세력의 한 축으로서 민주화 투쟁에도 앞장섰다. 1985년 47세에 제12대 국회의원(민주한국당)으로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했다. 이어 1988년 13대 국회에서 재선의원(통일민주당)이 됐다. 3선에 실패하고 한전고문으로 일하다가 1995년 울산시 초대민선시장에 당선돼 정치인으로서 재기했다. 1997년 광역시 승격을 이끌었고 이듬해 시장에 재선됐다. 임기 마무리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 건설비리에 휘말려 뜻하지 않은 고생도 했으나 그가 치부를 위해 나쁜 짓을 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시장 재임시절인 1998년 육종암을 앓았고 2001년 폐암으로 전이돼 또 투병생활을 했다. 설암까지 겹쳐 3개의 암을 이겨냈다. 특유의 강력한 의지와 열정으로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전설이다.

정계를 은퇴하고서도 그의 울산사랑에는 멈춤이 없었다. 울산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격려와 조언을 서슴지 않았다. 옥중에서도 울산지역 신문들을 한자도 빠뜨리지 않고 읽으며 울산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않았다.

온몸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그, 그는 이제 떠났다. 그가 울산광역시의 초대 시장이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저 세상에서는 조금 더 편안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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