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부산 방면 국도를 타고 가다 울산예술고등학교가 보이는 대복삼거리에서 통도사 방향으로 꺾어 삼동면사무소, 금곡마을, 경양식집 나마스테를 차례로 지나면 울주군 삼동면 보은리(송정, 원보은)가 나온다.

 보은리에서 다리를 건너자 마자 오른쪽으로 45도 정도 꺾어 2차선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1차선 너비의 시멘트 포장길이 나온다. 원보은마을 입구다.

 원보은마을에는 16가구 가운데 15가구가 단양우씨(丹陽禹氏) 문패를 달고 있다. 단 한집 뿐인 송씨가 이사온 것도 3~4년 전에 불과하다. 약 700여년 전 경주에 살던 우인경(禹仁鏡)이 보은에 자리를 잡은 이후 지금까지 단양우씨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 왔다. 당시 우인경은 목사(牧使·조선 때 정3품의 외직 문관 벼슬)를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우진구(81) 옹은 "시조의 19대인 4형제 가운데 첫째는 경주, 둘째 인경 할아버지는 보은, 셋째는 기장, 넷째는 온양 발리에 각각 자리를 잡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며 "한 때는 30여가구에 이르렀지만 젊은 사람들이 모두 나가고 지금은 나이 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집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아스팔트 길에서 시멘트 포장길로 접어들자 마자 오른쪽 언덕에는 작은 규모의 효자각(孝子閣)이 있다. 동몽교관조봉대부 우사곤(禹師鯤)의 효자각이다. 효자각에는 임진년(1592)에 유림에서 하사받은 증표(간판모양)가 걸려있다. 또다른 증표(사진)는 지방공무원으로 퇴직한 우영구(70·전 울주군의원)씨가 집에 보관하고 있다.

 우영구씨는 "상소문과 증표에 새겨진 내용들을 보면 "11세의 사곤이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20리길(언양)을 걸어 산나물을 판 뒤 고기를 사다가 모친을 봉양하고, 모친의 몸에 난 종기를 입으로 빨아내 종기를 낫게했다"고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당시 동네 사람들이 100여차례에 걸쳐 나라에 상소문을 올리고 수많은 검증을 거쳐 효자로 인정하는 증표를 내려받은 것을 보면 당시에는 효자로 인정받는 과정이 상당히 어려웠던 모양"이라며 집에서 보관중인 상소문을 내놨다.

 상소문은 우사곤의 효행과 함께 우씨, 강씨, 이씨, 신씨 등 수십명의 일대 주민 이름이 적혀있고 현장 검증을 다녀간 듯한 암행어사의 싸인과 함께 마패가 곳곳에 찍혀 있다. 2절지 크기의 한지로 된 상소문은 100여장에 달한다. 어떤 상소문에는 임금의 옥쇄가 찍혀 있다.

 우영구씨는 "상소문마다 갑인년, 을축년, 경진년 등으로만 적혀있어 정확한 년도는 알 수 없지만 증표에 임진년이라고 새겨진 것으로 봐서 상소문들은 임진년 이전의 것으로 추측된다"며 "상소문의 글씨는 꽤 조예가 깊다는 서예가들도 놀랄 정도인데 우리가 어렸을 때는 상소문이 소중한 줄도 모르고 연을 만들어 날려버리기도 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후손들은 고향을 찾을 때마다 마을 입구에 있는 효자각을 향해 절을 하면서 조상의 효성을 되새기고 있다.

 또 큰 길에서 보은마을로 꺾기 직전 길가에 보이는 비(碑)는 우진구 옹의 큰 형인 고 우통구 송공비다. 이른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한 우통구씨는 40여년 전 원보은마을 일대의 농로를 개설하고 학교에 교재를 기증했다.

 우진구 옹은 "40여년 전 초가지붕을 기와로 교체할 때 큰 길까지 실어온 기와를 마을 입구까지 2~3일씩 지게로 져 나르는 것을 보고 큰형님이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사비를 털어 농로를 개설했다"며 "리어카도 없던 시절에 농로를 닦고 처음으로 리어카 2대를 맞춰 농사에 사용했다"고 전했다.

 보은(寶隱) 마을은 "보배가 숨어있다"는 뜻을 갖고 있다. 원보은 마을에는 먹으면 무병장수(無病長壽)하는 석유(石乳·돌에서 나오는 젖)가 나오는 바위가 있었는데 이를 서로 먹으려고 싸움이 잦자 한 도인(道人)이 석유가 나오는 구멍을 막아버렸다는 전설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원보은 마을 앞에는 논과 함께 나즈막한 봉우리가 있다. 이 봉우리는 신라 왕자의 태(胎)를 묻은 곳이라고 해서 태봉(胎峰)이라 불린다. 우진구 옹은 "봉우리를 둘러싸고 둥글게 길이 나 있는데 태봉 인근 곳곳에서는 금반지 등이 자주 나온다"며 "수년전까지 도굴꾼들이 자주 찾았는데 고려장을 했던 곳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지금 이 마을에는 문중 종손인 우병길씨와 군의원을 지낸 우영구씨, 경로, 병수, 병열, 병윤, 병철, 종구, 주석, 진구, 진숙씨 등이 살고 있다. 문패만 달려있고 비어있는 집도 서너집 있다. 우정길씨는 울주군 총무과장으로 퇴직했다. 우하영(울주군 총무계장), 우병관(울산시 여성정책과), 우정욱(남구청 녹지과)씨가 원보은마을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주왕씨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현직에서 대위로 있고 경구씨가 서울 설계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는 병용 병수 병덕씨, 경수(SK(주)) 인철(울산화학) 병조(전하카센터) 병헌(온산보람병원) 정용(금강고려화학) 영근((주)효성) 원주(삼성SDI) 승부(KT) 종호(부산우체국) 병석(범서바다회센터)씨 등이 원보은마을 출신이다. 박은정기자 musou@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