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있던 시장이란 뜻의 재래시장
문화유산·역사적 가치 이미지 입히고
활성화 명목 ‘전통시장’으로 명칭 바꿔

▲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재래시장과 전통시장은 같은 것일까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면 법적으로는 정확히 일치한다. 관련 법률에서 일제강점기 이래 재래시장이라고 부르던 것을 2010년에 전통시장으로 이름만 바꾸었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는 1914년 시장에 관한 법률을 만들 때 한국인이 이용하는 장시(5일장)를 재래시장, 일본인을 위해 새로 설치한 시장을 신식시장이라고 불렀다. 당시 재래시장이라는 말에는 ‘원시적이고 낡은 유습’이라는 한국인 비하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러나 국사교과서에 따르면 장시는 조선 후기에 이루어진 상업 발달의 상징이다. 처음 장시가 등장했을 때 조정은 찬반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이 새로운 교역의 장소가 풍기를 어지럽히고 전통을 훼손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장시는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돼 백성들 누구나 즐겨 찾는 상거래와 오락의 장소로 자리 잡았다. 그로부터 200년도 되지 않아, 이번에는 식민지 조선의 낙후성을 증명하는 제도로 낙인이 찍혔던 것이다.

재래시장이란 예전부터 있던 시장이라는 뜻이다. 20세기 전반기에는 장시만을 가리켰지만, 해방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시장들로 범위가 확대되었다. 예를 들면 울산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신정시장은 1960년대에 처음 등장했다. 공업화와 함께 인구가 늘어나고 주택지가 개발되면서 노점 형태로 출발해서 1970년대에 상가 건물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었다. 5일장과 비교하면 당시로서는 외형이나 운영 방식에서 근대적 신식시장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에는 새로 생겨난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점과 비교해서 재래시장으로 분류되었다.

재래시장이 전통시장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 데에도 사연이 있다. 현대적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비해 재래시장이 경쟁력을 잃어가자 상인들은 시장 현대화에 힘썼다. 정부 지원을 받아 날씨와 상관없이 시장을 찾을 수 있도록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주차장을 정비했다. 그런 노력으로도 시장의 쇠퇴를 막기 어려워졌을 때 시도한 것이 ‘문화’를 이용한 시장의 활성화였다. 외형적 시설로는 경쟁이 어려워지자, 재래시장의 추억과 사람냄새를 내세워 고객을 모으려는 전략 변경이었다. 그런 노력이 효과를 거두면서 아예 명칭도 전통시장으로 바꾸었다.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서는 전통시장을 ‘상품이나 용역의 거래가 상호신뢰에 기초하여 전통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장소’라고 정의하고 있다. 마트나 백화점의 거래가 상호신뢰 없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여기서 말하는 전통적 방식의 거래가 어떤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더욱이 태화장이나 남창장 같은 5일장과 신정시장 같은 상설시장 사이에는 다른 점이 많다. 그렇지만 그런 시장 모두가 재래시장으로 분류되었으며, 거기에는 ‘낡았다’ ‘오래되었다’ ‘예전부터 있었다’라는 뜻이 들어있었다. 2010년 법률 용어를 전통시장으로 바꾼 것은 그 시장들에 ‘문화유산’이나 ‘역사적 가치’라는 이미지를 입히기 위해서였다. 형식상 달라진 것은 별로 없지만, 전통시장에 대해 소중하게 보존해야 할 문화적 가치를 부여했던 것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바꾸어놓는다. 새로운 것이 오래된 것으로 변하고, 낡은 것이 소중한 전통으로 대우받기도 한다. 같은 자리를 지키는 산골짜기 나무도 주변 환경이 변하면 대로변에서 매연에 시달리는 처지로 바뀌게 된다. 제도나 문화, 가치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울산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많은 사람이 ‘정답’을 제시하기 위해 고심하는 것을 본다. 항구도시에서부터 군사도시, 성곽도시, 산업도시, 노동자도시, 고래도시, 생태도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답이 다투어 등장한다. 그 모두가 울산의 정체성이다. 도시의 과거가 도시에 여러 가지 정체성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지금 상상도 할 수 없는 또 다른 정체성이 추가될 수도 있다. 울산의 정체성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시민들의 선택과 실천에 의해 결정되고 변화하며 또 새롭게 만들어질 것이다. 역사가 계속되는 한은 말이다.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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