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원내대표 전략·전술 차이 확연
의석수 여당이 많아도 표심은 박빙
대선 앞두고 여론 움직임 잘 살펴야
21대 국회가 ‘개문 난장판’ 꼴이다. 문을 열자마자 밥그릇 싸움으로 또다시 파행국면을 맞았다. 5월29일 막을 내린 20대 국회에서 공수처법안 처리 등을 둘러싸고 그렇게도 치고받던 여야는 “이젠부터 정말 협치로 가자”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대국민 공개사과를 하고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핏대를 올리며 으르렁 거리고 있다. 4·15총선 물갈이 공천으로 일정부분 얼굴만 바뀌었을뿐 구태는 20대 국회 판박이나 진배없다.
엊그제 본회의장에서 의사봉을 쥔 박병석 국회의장은 ‘원구성 데드라인’을 넘길수 없다며 경기장에 불참한 통합당 의원들을 일방적으로 상임위에 배치했다. 시쳇말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기술이 뛰어난 축구선수들은 배구장에, 빠른 슛팅에 능숙한 농구선수들은 야구장에, 민첩하면서도 양팔이 고도로 발달된 테니스 선수는 ‘동네 족구장’으로 몰아 넣었다. 그리곤 ‘친정식구들’(176+α)이 추천한 법제사법위원장을 비롯한 6개 상임위원장 후보 선출을 상정, 일사천리로 통과시키고 방망이를 두드렸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사령탑의 지휘로 경기장 밖에서 대기했던 103명의 선수들은 망연자실했다. 개원벽두부터 단련된 기량을 발휘해보겠다고 21대 국회에 등원한 초년병들은 분홍색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지역구 주민들 앞에서 뽐을 냈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가지 분명한 건 여당과 야당의 전략과 전술이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원내사령탑 ‘김태년’은 청년시절 경희대 학생회장 출신의 운동권에서 정계에 입문한 완전 야전군 스타일의 치밀한 전략가다. 호남출신으로 수도권에서도 민심이 가파른 경기 성남에서 내리 4선을 기록한 민심의 전문가다. 친문핵심인 김 원내대표는 물밑과 공중전을 병행하면서 ‘176+α’의 초대형 선수들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협상파트너 주호영 감독을 대상으로 현란하게 교란전술을 펼쳤다.
통합당 103명의 선수들을 지휘하고 있는 주호영 감독은 판사출신. 평소 품격과 신뢰를 고루 갖춘 당내 몇 안되는 ‘신사’로 통한다. 대국민 소통능력 또한 탁월할 뿐만 아니라 약속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성품이다. 각종 미디어 방송 토론에도 단골로 출연할만큼 합리성에다 달변가로 평가받는다. ‘보수의 안방’ 대구에서 지역구는 바뀌었지만 내리 5선을 했다. 주 대표의 대여전략은 합리적 전략으로 ‘상대적 우위’를 노렸다. 원내협상과정에서 상황에 따라 날선 대치는 있어도 결과적으론 18개 위원장 가운데 최소 7~8개는 갖고올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비쳐졌다. 여기서 함정은 대여협상의 파트너인 ‘김태년 스타일’의 치밀한 전략전술을 간과한 것이다.
김 원내대표 주도로 일사천리 6개 상임위원장을 처리한 직후 주 대표는 “모든 상임위원장을 다 가져가라”고 공격하면서 원내대표 사의를 밝히고 ‘잠수’를 탔다. 안타깝지만 명분도 실리도 챙기는데 실패한 장수는 미래가 어둡다는 냉혹한 현실이다. 장수만 죽는 게 아니다. 장수의 전략을 믿고 야밤에 행군길에 나선 103명도 결국엔 용병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여기서 집권측 김태년 대표에게 짚고 싶은 게 있다. ‘오늘의 완벽한 승자’일지라도 ‘영원한 승자’가 아니다는 점이다. 4·15 총선결과 의원숫자는‘176대103’으로 집권측이 압도하지만 종합표심은 ‘48%대(민주) 41%(통합)’라는 정치적 함수관계를 고민해야 한다. 7%p대의 여론격차는 불과 4%p로 박빙의 역전이 될 수도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가능한 수치다. ‘새우 몇마리 더 잡으려다 결과적으로 고래를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될 수도 있다. 2022년 3월9일 예고된 차기 대선은 불과 1년8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김두수 정치부 서울본부장 dusoo@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