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이군인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퇴원기념 이별의 시.

한국전쟁 때 육군병원으로
활용됐던 증거 첫 발견 주목
단기 4284년이란 손글씨에
퇴원하며 남긴 3편의 詩 확인
탱크 등 연필로 그린 그림도

오는 25일은 한반도에 6·25전쟁이 발발한지 70년이 되는 날이다. 최근 양산 통도사 대광명전에서 70년 전 부상당한 군인의 낙서가 발견됐다.

당시 통도사가 육군병원으로 활용됐다는 실제 흔적이 처음으로 확인 된 것이다.

통도사가 한국전쟁 당시 제31육군정양원 (제2)분원으로 활용됐다는 것은 지난해 10월 국군의 날에 처음 알려졌다.

상이군인을 치료하는 제31육군정양원 본원은 부산 동래에 있었는데, 통도사는 그 분원이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그동안 노승과 사찰주변 주민들의 구술로만 전해지다 지난해 9월 통도사 용화전 미륵불소조좌상 복장유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1952년 조성 연기문이 발견되며 사실로 확인됐다.

연기문에는 ‘6월25일 사변 후 국군상이병 3000여 명이 입사(入寺)하야 1952년 4월12일 퇴거(退去)’했다고 기술됐다.

이후 추가적인 내용을 발견하기위해 통도사 측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 이번엔 당시 상이군인들이 치료를 받으면서 사찰 건물 벽면 등에 답답하고 불안한 심정 등을 손글씨로 남긴 사연들이 추가로 발견된 것이다.

낙서 등을 찾는 작업에는 이병길 울산민예총 감사도 동참했다.

우선 대광명전에 남겨진 손글씨는 ‘단기 4284년’(1951)이라는 연도가 명확하다. 못으로는 ‘4284년 5월29일 도착하여 6월12일 떠나간다’고 새겼다.

연필로 쓴 ‘단기 4284년 4월29일 퇴원(退院) 상자(傷者) 출발(出發)’이라는 문구도 있다. 나무기둥에는 칼로 ‘4284년 6월10일 평양’이라는 내용도 새겨져 있다.

퇴원하며 남긴 3편의 시도 확인된다. ‘가노라 통도사야 잘 있거라 전우들아/ 정든 통도를 떠나랴고 하려마는/ 세상이 하도 수상하니 갈 수밖에 더 있느냐’ ‘통도사야 잘 있거라/ 전우는 가련다’ ‘전우야/ 잘 있거라/ 나는 간다’ 등이다. 그밖에 사람의 이름석자도 확인된다.

▲ 한국전쟁 당시 낙서가 발견된 통도사 대광명전.

글귀 외에 연필로 그린 그림도 있다. 아이얼굴, 모자, 모자 쓴 얼굴, 그리고 건물 그림 등이다.

무엇보다 대광명전 북쪽 바깥 벽에는 전시상황과 군인이 남겼다는 결정적 증거인 탱크와 트럭 그림도 확인됐다.

그 동안의 조사과정을 정리하면 당시 통도사를 병원으로 활용하게 되면서 처음에는 모든 스님들에게 절을 비우라고 했다.

하지만 스님들은 부처를 모신 도량을 절대 떠날 수 없다며 통도사에 남아 부상병 치료를 도왔다. 그 수가 500명에 이른다.

부상병은 3000여 명이 가쳐갔다. 전각과 산내 암자에는 낙동강 전선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들로 가득했고, 치료를 받다 숨진 병사가 매일 10여명이 넘었다.

심지어 통도사 명부전이 군 교회로 사용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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