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먼저 내온 버섯무침을 맛보며/ 올갱이 잘 줍던 평복이 누나 영숙이 누나,/ 푸근하던 웃음과 눈매 떠오르고, 올갱이 줍던 그 희고 통통하던 종아리들 생각나고,/ 저녁상 물린 뒤 삶은 올갱이 옷핀으로 빼먹던 생각 나고/ 이빨로 올갱이 꽁지 뚝 땐 다음 단번에 쪽 빨아 먹던 형님들 생각나고/ 나도 따라 해보다가 이 아파 쩔쩔매던 생각도 나다가/ ‘영동에서’ 일부(김사인)

필자가 처갓집에 가면 영락없이 내놓는 것이 다슬기국이다. 술을 좋아하는 필자의 건강을 위해 장모는 6월이 되면 다슬기를 담뿍 주워 냉장고에 얼려둔다. 그리고는 틈만 나면 다슬기국을 내놓았다. 간에는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며 강제로 입에 떠넣었다.

울산에서는 다슬기 보다는 ‘고디’라고 불렀다. 고디탕, 고디국, 고디전…. ‘고디’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모든 것은 음식이 됐다. 충청도에서는 ‘올갱이’, 전라도에서는 ‘대사리’라고 부른다.

이맘때면 냇가에는 다리를 둥둥 걷고 다슬기를 줍는 아이들이 많았다. 다슬기는 바위 표면에 붙어 있다가 살짝만 건드려도 떨어져 나갔다. 두 손으로 물밑의 바위를 쓱 훑으면 한웅큼씩 잡기도 했다. 6월의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 다슬기를 잡다말고 웅덩이 속으로 첨벙 뛰어들곤 했다. 그렇게 잡은 다슬기는 저녁 식탁에 고디탕, 고디국으로 올라왔다. 저녁을 먹고난 뒤에는 핀이나 바늘로 알갱이를 빼내 간식으로 먹었다. 소금기가 밴 짭짤한 다슬기는 여름밤 최고의 간식이었다.

다슬기는 1급수에만 사는 생물로, 알갱이를 빼면 녹색이 유난히 빛이 난다. 여기다 부추를 넣으면 다슬기와 부추가 파란 국물을 만들어 냈다. 동의보감과 본초강목를 보면 숙취와 갈증 해소, 황달 치료, 간기능 회복, 체내 독소 배출 등에 좋고 눈을 밝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나와 있다. 옛날부터 조상들은 다슬기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겼다. 18세기 말 조선의 학자 이만영이 저술한 <재물보(才物譜)>에는 ‘호수나 시냇물에 있으며 논우렁보다 그 크기가 작다. 삶아서 살을 빼어 먹는데, 어린 아이들이 즐겨 먹는다’고 돼 있다.

고디/ 한 대접을 샀다/ 칠성시장 난전에서// 아이들 일기장에 쓸거리를 줘야한다던// 젊은 날 아내의 말과/ 반짝이는 강물을 샀다// 기억에 젖어오는 철부지들 물장구/ 강바닥 조약돌들과 땅강아지 모래집이// 아련한 행복이어서/ 고디/ 한 대접을 샀다 ‘아련한 행복’ 전문(채천수)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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