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범위하고 다채로운 문화산업은
지방정부 힘만으론 활성화에 한계
문화도시 위한 문화산업체 육성을

▲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문화를 산업으로 인식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21세기 정치학 대사전이라 불리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처음 사용했다. 1947년 출간된 이 책에서 저자는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대중문화(popular culture)와 구분하기 위해 문화산업(culture industry)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고안했다. 문화가 이윤을 추구하는 비즈니스가 되었음을 선언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문화관광부에 문화산업국을 신설하면서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으나 2001년 문화콘텐츠진흥원 설립과 함께 ‘문화콘텐츠산업’이 문화산업을 통칭하는 대표 용어로 쓰이고 있다.

<계몽의 변증법>으로부터 7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분명 ‘문화가 돈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특히 BTS로 대변되는 ‘한류’로 인해 문화산업의 엄청난 부가가치를 실감하면서 지방도시들도 문화산업 활성화에 매진하는 추세다. 울산시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날 문화산업의 ‘대표선수’격인 마이스(MICE 모임·관광·회의·전시)산업 육성을 위해 많은 예산을 들여 전시컨벤션센터를 짓고 국가정원을 비롯한 관광자원을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산업 활성화는 지방정부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지역내 풍부한 문화산업의 저변이 형성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유네스코나 관세및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의 규정에 따르면 문화산업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문화적 성격의 상품과 서비스(예를 들면 음악, 방송, 영화, 출판, 디자인 등)의 창조와 생산, 유통에 관련된 산업’을 의미한다. 워낙 광범위한데다 갈수록 창의적이고 다채로워지기 때문에 지방행정의 경직된 사고와 체계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방정부가 문화에 관심을 쏟을 수록 오히려 민간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이상한 구조가 성립돼 있는 것도 문제다. 일반 산업과 달리 문화산업에 있어서는 유독 민간기업이 지방정부와 경쟁을 해야 한다. 지방정부는 문화활성화라는 정책으로 예산을 들여 문화산업을 직접 수행하거나 저가(低價) 또는 무료공세를 펴기 때문에 소규모 민간기업으로선 아예 좇아갈 수가 없다. 때론 정치와 문화를 결합해 교묘하게 정부와 자본에 종속시켜 문화산업체의 개성과 자생력을 말살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겨우 지방정부가 주관하는 문화행사·사업에 기술과 재능을 제공하는 종속관계에 놓인 소규모 기획사만 살아남아 문화산업의 명맥을 잇고 있다.

문화도시를 가장 쉽게 정의하면 ‘문화로 돈을 벌 수 있는 도시’다. 문화가 다양하게 생산되고 쉽게 소비가 이뤄지는, 문화산업이 활발한 도시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문화와 예술을 혼돈하면서, 마치 문화사업으로 돈을 버는 것이 예술의 순수성을 저해하는 것인양 폄훼하는 이중성을 드러내곤 한다. 그래서 때론 문화사업을 활성화하기는커녕 은연중에 죄악시하기도 한다. 물론 스스로를 굽혀 세상에 아첨하는 ‘곡예아세(曲藝阿世)’로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문화와 예술에 객관적 가치를 매겨 판매하는 문화산업이 대중에게 문화를 전달하는 가장 정당한 방법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자동차 생산량이 많은 도시가 자동차의 도시라 불리듯, 문화시장이 큰 도시가 문화도시다. 울산시가 문화도시를 지향한다면, 문화·마이스산업을 미래 신성장동력의 하나로 꼽는다면, 민간 문화산업 활성화를 위한 문화산업체 육성을 서둘러야 한다. 문화의 일차 생산자인 예술가와 문화소비활동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문화산업이 성장할 수도, 문화도시가 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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