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의 창업주 신격호 회장이 작고한지 벌써 5개월이 지났다. 울산은 창업주 신격호의 고향이다. 그는 젊은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했지만 고향 울산을 잊지 않고 매년 이웃사람들을 초대해 잔치를 베풀며 정을 이어갔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것에 비하면 울산에 큰 투자가 없었다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으나 그가 작고하자 울산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고향사랑을 되새기며 가슴 깊이 그를 추모했다. 고향의 양지바른 언덕에 묻히고 싶어했던 생전의 바람에 따라 신회장은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야산에 잠들었다.

롯데그룹은 신회장의 발인일인 지난 1월22일 보도자료를 통해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울산과의 인연을 이어가겠다면서 ‘신격호 재단’ 설립을 발표했다. 그와 함께 롯데정밀화학 부지를 활용한 아트센터 건립과 롯데별장으로 불리는 둔기리 별장터의 친수공원 조성도 약속했다. 신격호 재단은 그의 유산으로 설립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재단 출범은 물론 약속을 지키기 위한 어떠한 절차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롯데가의 상속 작업이 아직 진행 중이라는 것이 롯데측이 말하는 이유다.

울주군은 “신회장의 묘지 문제를 논의할 때만 해도 금방 추진할 것 같았는데 그 이후론 아무런 제스처도 없다”면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롯데는 울산이 창업주의 고향이지만 울산에 크게 기여한 바가 없다. 오히려 강동개발이나 복합환승센터 등에 대한 사업권을 갖고는 수년째 미루고 있어 울산의 발전에 큰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둔기리 별장터는 수십년간 공유지를 무단점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울산시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신격호 회장이 타계하고 고향에 묻히는 과정에서 재단설립을 통한 지역사회 기여를 약속하자 울산시민들은 자녀들이 고향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문화시설 건립을 통해 오랜기간의 응어리를 풀어줄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한 것이다.

하지만 5개월이 흐른 지금 ‘신격호 재단’ 설립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롯데가 그동안 울산에서 벌여온 사업들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신뢰를 심어주지 못한데다 신격호 재단 출범에 대해 자녀 4명 중 일부가 반대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롯데는 수십년간 무단점유해온 롯데별장 부지를 울산시민들이 만족할만한 시설로 조성해 되돌려줄 책임이 있다. 또 신회장의 묘지 관련 행정적 지원에 대한 감사의 의미에서 신격호 재단과 아트센터 설립을 약속했다면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한다. 기업은 신뢰가 무엇보다 큰 자산이다.

시와 울주군도 손을 놓고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롯데가가 약속을 지키도록 압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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