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속리산의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흘러내려 마을 앞 절벽에서 폭포를 이룬다.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 장각폭포다. 비온 뒤라 폭포는 소리까지 힘차다. 조촐한 정자 금란정과 노송이 어우러져 여름풍경으로는 그만이다. 이곳에서 좁은 산길을 따라 20여분을 걸어 들어가면 장각동이다. ‘신선마을’이라는 표석이 나오면 바로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언덕 위에 우뚝한 상오리 칠층석탑이 있기 때문이다. 계단 아래쪽에서 보면 하늘에 닿을 듯 아찔하게 높아 보인다. 장각동은 천왕봉을 오르는 속리산의 들머리이고 반대편 보은의 법주사에서 올라 문장대를 거쳐 내려오는 날머리인지라 등산객들에겐 친숙한 탑이기도 하다.

높이 9.21m의 이 탑은 고려 전기에 조성되었으며 보물 제 683호이다. 얕은 토단 위에 이중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칠층을 올렸다.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 있다. 돌로 테두리를 잡아 구역을 정한 것이 이 탑의 특징이다. 주변을 모두 밭으로 내어 주고 선 자리가 비좁아 옹색해 보이지만 칠층이라는 높이 때문에 기상이 씩씩하다. 고만고만하게 자라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눈에 띄게 ‘키 쑥쑥 몸 튼튼’ 잘 자라 훤칠하고 잘 생긴 호쾌한 사나이가 되어 떡하니 빛나고 있는 듯하여 흐뭇하게 올려다본다. 속리산의 정기가 은근히 배어 나온다.

 

밭은 풍성하다. 탑을 닮아 식물들도 생명력을 자랑한다. 호박넝쿨은 황금 꽃을 달고 장하게 뻗어가고 고추, 토마토, 가지는 열매를 맺느라 한창이다. 콩잎은 튼실하고 매끈하다. 탑 뒤쪽으론 개망초와 미나리냉이가 다투어 하얀 꽃을 피워 탑을 향한 사모의 몸짓을 보낸다. 뭇 새들의 지저귐으로 주변은 왁자하다. 온갖 벌레들도 제 세상인양 성하다. 모두 상오리 칠층석탑의 기운을 받은 탓이다.

장대한 탑이 있으니 분명 법주사 못지않은 큰 절집이 있었을 터이지만 어디에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나고 죽고 흥하고 망하는 것이 어찌 사람의 일이기만 할까. 키 큰 석탑을 속절없이 홀로 두고 계단을 내려온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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