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주은 전 울산과학대 교수·국문학

근래 울산에도 비가 자주 내렸다. 우리 민중의 담화인 속담에서 비와 관련된 우리 말의 재미있는 쓰임새를 살펴볼 수 있다.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속담으로는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가랑비에 옷 젖는줄 모른다.’가 있다.

또 ‘가물 그루터기는 있어도 장마 그루터기는 없다.’는 말도 있다. 이 속담은 가뭄이 오래되면 나무가 말라 죽더라도 그 그루터기는 남지만, 물난리가 나면 나무가 통째로 휩쓸려 가버리기 때문에 그루터기조차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비슷한 말로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가뭄보다 장마가 더 피해가 크고 복구하는 데도 힘이 더 드는 법이라는 의미이다.

그 밖에도 ‘가을 안개는 천 석을 올리고 봄 안개는 천 석을 내린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 ‘비 오는 것은 밥 짓는 부엌에서 먼저 안다.’ 등 의미심장한 말도 있다.

비에 관한 명칭도 다양하다. 구슬비, 빗방울이 맺히는 모양이 구슬처럼 맑고 투명하게 맺히는 모양에서 나온 말로 가늘게 내리는 비를 말한다. 보슬비는 바람이 없는 날 조용히 내리는 비로 가늘고 성기게 내리는 비를 말하고, 이슬비는 아주 가늘게 내리는 비인데 안개비 보다는 굵고 가랑비 보다는 가늘다. 가랑비는 이슬비 보다는 좀 굵은 가늘게 내리는 비를 말한다. 장마는 여름철에 여러 날을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나 날씨를 가리킨다.

비를 표현하는 순우리말도 있다. 가늘고 부스러지듯이 내리는 비로, 마치 가루와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 가루비. 오뉴월 장마를 이르는 말로, 거름으로 쓰이는 개똥처럼 좋은 장마라는 의미로 개똥장마. 필요할 때 알맞게 오는 비를 단비. 바람과 함께 내리는 비는 바람비. 실처럼 가늘게 오는 비는 실비. 가늘게 내리는 비로 빗줄기가 매우 가늘어서 안개처럼 부옇게 보인다고 해서 안개비. 볕이 나 있는 날 잠깐 오다가 그치는 비는 여우비. 이에 비해 장마로 큰물이 난 뒤,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퍼붓는 비가 갯가나 흙탕물이 지나간 자리에 앉은 검고 고운 흙을 부시어 내는 비를 ‘개부심’이라고 한다.

장마를 맞아 식수와 농사에 필요한 단비도 내리고, 코로나19 등 우리 공동사회에 불필요한 사연들은 개부심하기를 바란다. 윤주은 전 울산과학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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