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걸어 출근하며 주민생활 살펴
불황에 코로나 겹쳐 힘든 상황임에도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 느끼게 돕고파

▲ 정천석 울산 동구청장

걸어서 출근한 지가 4개월이 다 되어간다. 조선업 불황에다 코로나19까지 덮쳐서 어렵고 힘들어하는 주민들에게 아침 출근하면서 위로나 좀 해드릴까 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개학이 지연되니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다는 뉴스를 듣고, 처음에는 애들 등교하는 것하고 어른 농사짓는 것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 생각했는데 애들이 등교를 못하니 학교 급식 식재료 납품이 끊긴게 원인이었다. 우리 이웃들의 외출이 힘들어지니까 시장도 골목상권도 전·월세 임대차 거래도 모두 정지되다시피 했다. 이렇게 우리는 이웃과 공동운명체이며, 우리 이웃 한사람 한사람이 나에게는 소중한 은인이다. ‘동체대비(同體大悲)’라고 했던가? 부처님의 말씀이 벼락같은 깨달음으로 귓전을 때리는 듯 했다. 드디어 등교가 시작됐다. 골목이 생기가 돌고 있다. 왁자지껄하니 골목에 새 생명이 돌아온 것 같아 흐뭇하다.

처음 구청장이 되었을 때가 2006년이다. 그때는 조선업 주가가 훨훨 날 때였고 여유와 웃음이 넘쳤다. 그러나 2018년 다시 구청장이 되었을 때는 예전과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침체된 산업을 살리고 회사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구청만의 힘으로는 버겁지만 주민들이 쾌적하고 편안하게 살게 하는 일은 우리의 양질의 행정서비스로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법 주차와 쓰레기 없는 도로, 마음 놓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보행로, 기분을 상쾌하게 하는 가로수처럼, 비록 힘든 경제상황이지만 주민들이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한번에 큰 것을 확 바꾸려고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자고 결심했다.

보배같은 바다연안의 관광자원은 몇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버려진 상태였고 ‘해양 관광도시’는 빈 벽에 걸려있는 액자 속에 갇혀 있는 듯 했다. 침체된 조선업을 보완할 산업으로 ‘바다자원 체험형 관광사업’은 충분히 성공할 것이라 판단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표정이 살아있는 도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사람중심 보행로를 확대하고, 건물 부설주차장이 본래의 용도대로 사용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대책도 추진중이다.

이와 함께 주민들이 건강하고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푸른 도시 숲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남목 감나무골에는 감나무를 심고, 봄에 어디서나 흔한 벚꽃 대신 연분홍 치마처럼 예쁜 산복숭아나무를 동구의 관문인 염포산터널과 마성터널 입구에 심었다. 지난해에는 한여름 땡볕이 내리쬐는 일산해수욕장 바닷가에 해풍에도 튼튼하게 견디는 해송을 심었는데, 보란듯이 제법 뿌리를 튼튼히 내리며 잘 자라고 있다. 우리 지역만의 특색있는 가로수를 심어서 도시의 표정을 그려나가야겠다.

우리 지역은 농업인과 농업을 하려는 은퇴자, 퇴직자는 많아도 농경지나 경작지가 없다. 그린벨트 내이거나 공원지역이 대부분이다. 도시농업이 가능한 곳인 골짜기, 구릉지 등을 찾아서 퇴직자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 농업공동체를 활성화시켜나갈 생각인데, 토종농산물 생산과 퇴직자 일자리 창출, 쉼터 등 몇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여름에는 슬도에 수산생물체험장이 문을 연다. 취임 직후부터 속도를 냈던 체험형 바다자원 관광화 사업이 드디어 실체적 성과물로 나타나게 된 셈이다. 올 연말에는 현 방어진활어센터가 유통과 관광홍보 기능을 결합한 방어진 해양수산복합공간으로 변신하고, 내년 상반기에는 대왕암공원 출렁다리가 선보인다. 울산시에서 추진중인 대왕암공원 해상케이블카 조성사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늘 느끼지만 봄은 혹독한 겨울 속에 있다. 一陰一陽之謂道(일음일양지위도 :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니 이를 일러 도라 한다). 시야가 완전히 가릴 정도로 꽉 막힌 안갯속에서도 한 걸음씩 묵묵히 걷다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맑아진다. 우리의 앞을 가렸던 안개가 말끔히 걷힐 날도 이제 머지않아 보인다.

정천석 울산 동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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