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두석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지금 전반적으로 젊은이들의 구직의욕이 떨어지고 고용 상태는 나빠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서 5월 20~29세 청년 실업률은 10.3%로 가파르게 상승중이다. 단기적으로는 코로나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국가의 광범위한 의미의 혁신은 크게 증진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수출지향의 한국식 모델에 익숙해져 있다. 기존의 산업을 지속한다는 것은 검증된 방식을 유지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지만 반대로 기존의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 배의 노력이 들거나 성장이 지체돼 성장률이 낮아진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계속 혁신을 추구하면서 어떤 새로움에 도전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산업은 선박, 자동차, 철강, 휴대폰 등을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는 모델이었고 그 이상의 도약을 이루어내지 못했으며 결국 중국과 같은 국가에 도전을 받게 되었다. 최근의 브렉시트나 미국·중국 간의 패권전쟁으로 국제질서가 자유무역에 비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한마디로 장기적으로 노동의 수요부분에서 혁신이 지체돼 좋은 일자리는 충분히 늘지 않고 있다.

 

동시에 노동의 공급부분도 사실은 문제다. 젊은이들은 과거에 비해서 높은 교육을 받기 때문에 유보임금이 갈수록 높아진다. 젊은이들은 더 높은 삶의 수준을 원하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이나 사회의 인재로 성장하기 보다는 보상만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 고도 성장기에는 젊은이들이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였고 직장을 자신의 성장의 장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가지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높은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일을 배우고 성장한다는 성격이 강했다. 기업은 이러한 젊은이들의 열정을 연료로 삼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노동공급과 수요의 문제점이 이번에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더욱 드러나고 있다. 결국 남는 것은 오직 물질적인 보상과 그 보상만큼의 노동제공 등 기업과 노동의 관계가 단편적인 긴장관계만 만들고 있다.

생각컨대 여전히 젊은이들은 직장 혹은 일터를 단순히 노동을 하는 곳으로 보지 말고 자신이 더 성장하기 위한 하나의 장으로 보아야 한다. 대학이 기초교육을 위한 곳이라면 직장은 일종의 사회학교가 되어야 한다. 문제는, 높은 교육으로 인해 젊은이들의 수준이 높아지다 보니 지금의 일터가 젊은이들을 다음 수준으로 더 성장하게 만들 교육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코로나사태로 전반적인 사회·문화·경제가 비대면으로 급격히 넘어가고 있는데 기업문화는 여전히 과거의 ‘찐한’ 인간관계를 선호한다. 또한 젊은이들은 자신의 10년 후 20년 후의 모습이 지금의 기성세대인데 이미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여러 이유로 그 윗세대의 모습에 실망하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지금의 일자리 문제는 단순히 정부가 돈을 살포하거나 기계적으로 공공부분의 일자리를 만드는 방식으로는 해결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게임의 규칙을 유지하는 관리자나 시스템이지 혁신을 일으키는 집단이 아니다. 혁신이 없이 세금을 걷고, 걷은 세금을 다시 어딘가에 나눠주기만 하는 방식으로는 급한 코로나 사태는 어떻게 넘긴다고 해도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효율을 높이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일자리 문제는 궁극적으로 기업이 주축이 된 민간이 해결해야 한다. 혁신은 민간의 창의적인 기업가(혁신가, 벤처, 스타트업, 혹은 새로운 생각들)에서 나온다. 이들이 혁신을 사회에 이루어 냄으로써 사회가 성장하고 궁극적으로는 일자리를 해결할 수 있다. 기존의 기업으로서는 자신들의 임직원이 성장할 수 있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은 기업에서 성장한 직원들의 수준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물론 당장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들이 어떻게 변화될 것이냐라는 문제는 남겠지만 젊은이들이 기업과 함께 성장한다면 결국 기업의 장기적 이익도 함께 증가할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이러한 최소한의 공존과 성장을 도모하지 않는 기업은 갈수록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왜냐하면 지금 기업은 과거처럼 젊은이들의 에너지를 모아서 사용할 수 없다. 자신의 성장이 담보되지 않는 곳에서 누가 자신의 에너지를 그 기업에 그 이전 세대처럼 제공할까? 그런데 갈수록 시장은 높은 수준의 창의성과 에너지가 필요해지는데 물질적 보상으로만 움직이는 인재로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큰 기업과 큰 경쟁에서는 더 질 높고 깊은 회사 구성원들의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일자리를 찾는 사람도 바뀌어야 한다. 구조적인 실업문제를 논하기 전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기업은 젊은이를 뽑아야 할 유인이 크지 않을 수 있다. 이미 시장에는 적당한 수준의 경력직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기업입장에서는 어떤 의미로 신입사원을 뽑는 행위자체가 사회공헌일 수 있다. 기업은 진짜 사회나 기업에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고 기업 입장에서도 가능하면 그런 사람을 뽑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오용되어 열정페이 등을 옹호하는 논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젊은이는 스스로 기업과 사회의 인재로 성장하는 계획과 비전을 가지고 취업 역시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기업은 당연히 그런 인재를 뽑으려 하고 이를 알아보는 기업이 결국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문제가 도드라지기는 했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기존의 한국식 시스템으로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정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왼쪽이냐 오른쪽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경제·사회의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이제는 젊은이들은 새로운 생각을 하고 도전해야 하는 때이고 기업 역시 이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끼를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그러한 시스템을 설계해야 미래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장두석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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