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권 국립재난안전연구원장

테러로 확산되는 유독 가스를 피해서 도심 건물 옥상을 질주하는 두 남녀의 재난 탈출 영화 ‘엑시트’에서 형형색색의 드론이 재난지역 상공을 날며, 주인공들의 동선을 쫓아가며 탈출을 돕고, 숨막히는 이들의 사투장면을 사고현장 밖의 가족에게 실시간 영상으로 전달하는 활약상은 카메오 못지않은 또 다른 볼거리이다.

영화 ‘엑시트’에서 깜짝 활약하는 드론들은 단지 먼 미래의 이야기일 뿐일까?

매년 1월, 미국 라스베가스 컨벤션센터에서는 세계 곳곳의 얼리어답터들이 주목하는 세계가전박람회(CES·Consumer Electronics Show)가 열린다.

올해 CES 2020에서도 인공지능 로봇, 스마트 헬스, 자율주행 뉴 모빌리티 등 공상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미래 기술들을 미리 엿볼 수 있었다.

특히, 드론 전시관에서는 다수의 드론이 일사불란하게 군집 비행을 하고, 물고기처럼 유영하는 수중드론과 손바닥 안에서 쥐락펴락할 수 있는 크기의 소형 정찰드론, 미래 이동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는 개인승용드론 등 다양한 형태의 드론들이 선보였다.

이제 드론 기술은 더 이상 영화나 소설에서 접하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일상 가까이에 와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자리였다.

이러한 첨단의 드론 기술이 재난관리 업무에서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지난해 10월2일 오후 전남 해남에 상륙해 남·중부 내륙을 지나 10월3일 강원도로 빠져나간 태풍 미탁은 밤새 400㎜ 이상의 강한 폭우를 쏟아냈다. 부산에서는 야산 비탈이 무너져 잠자던 주민들이 안타깝게 토사에 매몰되었고, 특히, 피해가 컸던 강원, 전남, 경북의 삼척, 해남, 경주 등 11개 지역(6개 시·군, 5개 동·면)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다.

이 같은 전국적 피해가 발생하게 되면, 재난 복구비를 산정하기 위한 피해조사 지역과 조사대상 시설물이 많아져서 지자체의 피해조사 업무에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특히, 대규모 침수 및 산사태로 인한 피해지역은 조사자의 접근이 어렵고, 접근을 한다고 해도 광범위한 피해범위를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이러한 광범위한 재난현장의 상황 파악과 피해조사 업무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드론을 활용한 모니터링 및 측량 기술이 새로운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따라서, 행정안전부와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서는 드론을 활용해서 다양한 재난 상황 및 피해 형태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드론 촬영영상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여 피해가 많이 발생한 도로나 소하천 주변지역의 침수된 주택이나 농경지, 산사태, 무너진 시설물 등을 자동 탐지함으로써, 피해 조사자가 광범위한 재난 현장을 일일이 다니지 않더라도 신속하게 피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전국적으로 피해지역이 다수 발생할 경우, 드론을 현장에서 신속히 운용하고, 빠른 시간내에 여러 피해지역에서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서 민간의 드론 자원과 기술 인프라를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여름철이면 찾아오는 태풍과 집중호우로 인한 재난 상황에서, 드론은 광범위한 재난현장의 정보를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조사장비로 활용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한 지속적인 첨단기술의 개발과 현장 운용능력의 확보는 재난상황관리 및 복구 등의 재난관리 업무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재난관리 업무를 수행했던 담당자라면 한번쯤은 “영화 속의 첨단장비들이 현업에서 적용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제 머지않아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관련 연구분야의 선도를 위해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상권 국립재난안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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