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엄동설한에도 냉산 자락에 복숭아꽃 오얏꽃이 활짝 핀 것을 보고 아도화상은 그곳에 터를 잡고 절을 지었다. 신라 최초의 절 도리사다. 1600년 전이다. ‘동국최초가람’이라는 현판이 ‘태조산도리사’와 나란히 붙어있다. 복숭아꽃 오얏꽃이 피었다니 생각만 해도 묘하게 아득하고 어지럽다.

아도는 고구려 사람으로 눌지왕 때 신라로 들어와 불교를 전파했다. 도리사에는 아도화상이 좌선을 했다는 좌선대와 사적비가 나란히 있다. 아득한 시간을 건너온 절집에서 가장 마음을 끄는 곳은 주불전인 극락전과 그 앞마당에 놓인 석탑이 있는 공간이다. 조선 시대에 지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한 극락전은 화려하지만 고졸한 멋을 풍긴다.

극락전이 아름다운 건 아미타불이 내려다보는 뜰에 고려시대 중엽에 세워진 특별한 석탑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도리사를 대표하는 유물인 석탑은 어디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기단석은 높다. 네 모퉁이에 장대석을 배치하고 그 사이를 장방형 석재들로 결구하였다. 탑신부는 각 층마다 여러 개의 벽돌 모양의 돌을 쌓아 올린 형태로 모전석탑 계열로 보고 있다. 맨 위에는 연꽃이 새겨진 보주가 놓여있다. 화엄석탑으로 불린다. 걸림 없이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이 비추면서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화엄이라면, 도리사 석탑만큼 어떤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고 의젓하게 빛나는 탑은 없을 것이다. 키 큰 노송을 거느린 탑은 보물 제 470호이다.

 

탑이 선 마당에서 보면 스님들의 수행 공간인 태조 선원이 저만치 보인다. 오래된 당우로 정면에 걸린 ‘태조선원’ 현판은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인 위창 오세창 선생의 글씨다. 성철 큰 스님이 젊은 날 정진한 곳이기도 하다. 이 화엄석탑은 정진하는 많은 스님들에게 만발한 복숭아꽃 오얏꽃으로 피어 화두를 던졌을지도 모른다. 부슬부슬 비 내리는 오후, 태조선원 주련을 한참이나 읽어 본다. 그대로 부처님의 법문이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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