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석영 울산대 명예교수·식품영양학

2007년 7월이다. 장마 때 에어컨도 없는 집안에 웅크리고 있다가 소위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집 뒷산에 올랐다. 식품영양학과 교수이자 독성학자로서 식용버섯과 독버섯은 구분할 줄 알아야지 하는 생각과 긴 여름방학을 즐겨보자는 마음이었다.

채 120m 밖에 안 되는 야산이지만 2시간 만에 땀에 흠뻑 젖고 앉아 있을 힘도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떡이 되어 돌아왔는데 찬 물에 샤워를 하고 나니 상쾌하기 그지없고 여태 보지도 못하던 버섯 사진이 사진기에 잔뜩 들어 있다는 생각에 무언가 뿌듯했다. 그것이 버섯과의 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일주일 후 다시 올라갔다. 지난번에는 못 보았던 새로운 버섯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점차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거의 매일 오르게 됐고 개강 후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 산에 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버섯과의 만남이 시작되면서 그 다음에 봉착된 문제는 버섯의 이름을 찾는 일이었다. 버섯 이름은 어디서 찾나? 버섯도감이겠지. 그러나 버섯도감에 있는 버섯의 이름도 낯설고 도감을 하나하나 뒤적이다 보면 앞의 것이 가물가물해지기 일쑤였다.

▲ 태화강 대숲에 핀 망태버섯.

버섯에 관한 자료도 부족하고 이름이 외워지지도 않아 하도 답답해서 울산의 식물전문가이기도 한 M교장께 물었더니 “따로 왕도는 없고 자꾸 보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했다. 학교도서관에 한국에서 나온 버섯 책들을 신청해서 구비해 놓고 하나하나 빌려보기 시작했다.

2008년 들어 여름이 되자 십리대숲의 버섯이 또 다른 매력을 주기 시작했다. 대숲은 우리나라 중북부 지방에서는 자라기 어렵고 전남 담양이 대나무로 유명하지만, 그래도 대숲은 울산의 대표 상징이 아닌가. 하얀 드레스를 걸친 듯한 망태버섯은 대숲에서만 나는 버섯이다. 일본에서는 ‘버섯의 여왕’이라고 하는데 자태가 여간 귀티가 나는 게 아니다. 큰 산과 대숲이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울산은 그야말로 버섯 연구의 최적지임에 틀림없다.

2016년 울산생명의숲 윤석 사무국장의 요청으로 만든 국내 유일의 민간 버섯연구 모임인 울산생명의숲 버섯탐구회는 울산과학관에서 4회째 야생버섯 사진전을 개최했다. 지난달 14일에는 울산, 대구, 부산, 경남을 아우르는 영남알프스버섯연구회를 발족하여 명실공히 국내 최대의 민간 버섯 연구모임으로 발돋움했다.

어제 흠뻑 비가 오다가 아침에 비가 그친 듯하여 십리대숲으로 갔다. 오늘도 울산 십리대숲의 상징인 ‘망태버섯’이 아름답게 올라와 있다. 최석영 울산대 명예교수·식품영양학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