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술만 좋은 지도자 성공 못해
진심·애정 없는 메시지는 공허
그릇된 대처의 귀결지에 주목

▲ 한규만 울산대학교 교수 영문학

미국사회의 현재상황은 한 마디로 ‘엎친데 덮친 격’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힘들고 불행한 일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데, 문제는 불행 그 자체보다 미국 연방정부의 정점 즉 백악관의 최고책임자의 잘못된 대처에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특별한 승부수를 던지더라도 11월3일 대통령선거인단 선거일까지 이를 뒤집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일단 트럼프에게 불리한 코로나 사태와 인종차별 반대시위는 선거일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의 보수주의는 미국 전통 보수주의와 확연히 다르다. 최근 저학력 보수 백인들은 트럼프의 자유무역 반대, 이민 반대, 해외 군사개입 반대 등에 열광했다. 트럼프의 가치는 분명히 범위가 좁고도 좁다. 미국 중심, 백인 중심, 강자 중심이고, 타자에 대한 고립적, 차별적 성격을 띠고 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내가 마지막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될 것 같다”고 피력했다. 세계 최강대국의 최고책임자인 그에게는 동맹국도 없으며, 아시아인 흑인도 없으며, 자신 외의 모든 이는 대립적 존재일 뿐이다.

사실상 정치 신인이었던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고 가까스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반대자들도 지지자들도 모두 놀랐으나, 당연히 성공의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에서는 트럼프의 언어구사능력을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이라고 조롱하지만, 그의 소통무기 트윗은 간결하고 반복적이며 흥미를 유발한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언어의 인기비결을 3가지로 정리한다. 1)트럼프가 사용하는 언어는 단순하다. 어려운 단어를 피해 쉬운 단어로 말한다면 이해도와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 “(멕시코와의 국경에) 크고 아름다운 벽을 세우겠다”는 말은 어처구니없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2)트럼프 언어의 특징은 반복이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역시 유치하게 들리지만, 반복은 역사적으로 정치인들의 도구였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땅에서도… 들판과 거리에서도…”라고 했던 처칠의 유명한 연설도 반복이었다. 3)트럼프의 전략 중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연설을 하지 않고 그냥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의 ‘연설같지 않은 연설’은 언제나 즉흥적이고 흥미를 유발한다.

그렇다고 지도자가 화술만 좋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진심과 애정이 없는 메시지는 공허하다. 우리 조상의 인물평가기준인 신언서판(身言書判)에 비추어 보자면, 트럼프는 네 가지 미덕 중에서 풍채, 말, 글(트윗)까지는 성공했다. 마지막 관문인 판단력은 어떨까? 1)그의 동맹국에 대한 판단은 상당히 위험하다: ‘주독일 미군 감축’ ‘주한미군 감축’ 재정부담을 더 요구하는 사업가의 협상전략이라고 보기에는 금기를 건드린다. 2)최근 코로나 사태와 인종갈등 시위 대처를 보면서 그가 위험한 인물이라는 인식을 주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백악관이 학교개학을 반대하던 파우치 국립전염병연구소 소장을 사실상 퇴출했다. 또한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를 군대로 막겠다는 트럼프의 방침에 전·현 미국 국방장관이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3)트럼프의 진면목은 국정의 최고 지도자가 싸움, 조작, 거짓말의 대명사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가짜 ‘CNN 뉴스’ 영상을 트윗에 올려, ‘조작된 미디어’라는 경고 딱지가, 미니애폴리스 폭력 시위와 관련 ‘약탈하면 사격할 것’이라고 쓴 트럼프의 트윗에 ‘폭력 미화’ 경고문이 붙었다. 같은 신문은 트럼프가 취임후 하루 16번 총 2만번의 거짓말을 했다고 발표했다. 며칠 전 미국 젊은이들이 ‘코로나 전염시키기’파티를 했고, 파티에서 감염돼 숨진 환자가 “코로나는 거짓말인 줄 알았다”는 발언은 “확진자 99%는 무해”하다는 트럼프의 그릇된 주장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미국 국민이 어떤 결정을 할 지 두고 볼 일이다.

한규만 울산대학교 교수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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