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돈에 휘둘려 간신히 명맥유지 울산씨름

▲ 1960년대 울산 동천 백사장에서 열린 추석씨름대회 모습. 울산시소장자료

1924년 첫 전국대회 시작
각종 씨름대회 열린 울산
씨름 중심지로 자리매김
2000년대 들어 위상 급락
하나 남은 돌고래씨름단
예산문제로 해체위기 몰려

존폐 위기에 놓였던 울산 유일의 씨름단 동구 돌고래씨름단이 최근 울주군과 울산시가 울주군 이전에 합의하며 기사회생했다. 돌고래씨름단을 인수하는 울주군은 기존보다 규모를 키워 지역의 대표 체육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하지만 합의하기까지 운영비 등 예산 문제를 놓고 울산시와 울주군은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동구가 지역의 브랜드나 마찬가지였던 돌고래씨름단의 운영을 포기하기로 한 것도 결국 예산 문제였다.

‘씨름의 고장’이던 울산에서 씨름단의 존폐가 돈 문제에 좌우될 지경까지 위상이 추락한 것이다. 울산에서 전통 민속놀이인 씨름의 무게와 가치를 되짚어 보고, 울산이 씨름의 중심지로 재부활하기 위한 방안은 없는지 짚어본다.

◇전국 씨름의 중심지였던 울산

“울산은 그야말로 씨름의 중심지였죠. 요즘엔 다들 몰라서 그렇지 그 역사가 유구합니다.”

울산에서 전국 단위 규모의 씨름대회가 처음 열린 건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0년대다. 일제강점기였던 1924년 9월 울산군 하상면 동천사장에서 시대일보 병영분국이 제1회 남선각희대회를 열었다. 당시 씨름은 ‘각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또 1928년에는 태화강 중도 모래사장에서 울산남조선씨름대회가 열리는 등 울산에선 1960년대까지 여러 전국단위 씨름대회가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씨름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울산을 찾았고, 씨름대회가 열리면 울산은 물론 인근 지역 주민들까지 씨름구경을 위해 몰려들었다고 한다.

당시엔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장사를 ‘장군’이라 불렀는데 울산에서는 김작지 장군을 비롯해 우성열, 김영태 장군 등 수많은 장군이 배출되며 울산의 이름을 전국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1950년 한국전쟁에 이어 1960년대 빠르게 진행된 공업화로 20회까지 태화강 백사장에서 열렸던 전국씨름대회가 장소를 못찾아 우왕좌왕할 정도로 울산씨름이 흔들리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울산씨름은 1980년대 현대씨름단 창단(1981)에 이어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 개최(1983), 민족씨름위원회 출범(1983) 등 전국적인 씨름 부활의 기세를 등에 업고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울산씨름의 영광을 기억하던 씨름인들이 ‘역심회’를 만들고 전폭적으로 울산씨름 재건에 나서면서 1980년대 말부터 울산에서는 프로씨름단은 물론 초·중·고 씨름단이 창단돼 연계 육성됐을 정도였다.

◇예산 탓 존폐기로에 선 울산씨름

2020년 현재 울산에는 동구청 소속 ‘돌고래씨름단’만이 남았다. 1986년 창단돼 씨름판을 이끌며 울산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던 현대코끼리 씨름단은 국내 유일 마지막 프로팀으로 10년을 버티다가 지난 2016년 조선업 불황을 이유로 끝내 해체됐다. 프로 씨름단이 전부 해체되면서 현재 전국에는 돌고래씨름단을 포함해 19개 실업팀 씨름단만이 운영되고 있다.

울산씨름 최후의 보루로 불리는 돌고래씨름단도 사정이 여의치는 않다. 조선업 불황으로 동구 재정이 휘청이면서 몇 년 전부터는 해마다 해체 이야기가 나와 체육인들은 물론 옛 울산 씨름의 역사를 기억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술렁거리게 만들었다. 울산시가 뒤늦게 씨름단의 울주군 이전 추진을 위해 울주군, 동구와 함께 머리를 맞댔고, 진통 끝에 최종적으로 이전에 합의를 했으나 그 과정에서도 예산 문제는 계속 씨름단의 발목을 잡았다.

울산 체육계는 울산씨름을 단순한 예산 논리만을 가지고 판단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울산과 씨름이 함께해 온 세월은 울산의 역사 그 자체인데다, 지역의 대표 체육 종목으로 육성할 경우 지역 브랜드 창출 등 울산의 미래에도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코끼리씨름단에서 현역 선수로 활동하다가 은퇴 후 돌고래씨름단의 감독을 20년째 맡고 있는 이대진 감독은 “돌고래씨름단은 울산에 남은 마지막 씨름단이다. 아직도 울산에는 초·중·고·대학부에 걸쳐 씨름선수를 꿈꾸는 젊은 학생들이 많다. 돌고래씨름단은 울산의 젊은 씨름인들을 위한 마지막 무대이기에 돈으로 가치 판단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현주기자 khj1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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