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내내 여름기후인 말레이시아
계절변화에 대응하는 이들에 비해
일처리에도 대응력 떨어지는걸까
이제 장마가 그치면 무더위가 시작되고, 학교의 방학과 더불어 본격적인 피서가 시작되는 철이다. 그렇지만 올해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그동안의 모든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제 전 세계인들의 규범이 되었고, 피서철이 된다고 해도 국경이 예전처럼 개방되지 않으면 해외여행은 불가하니 이 때가 대목인 사람들의 경제효과는 적어도 올해는 일부 내국인들의 효과에 그치지 않겠는가.
무더위가 시작되면, 푸른 하늘, 녹음 짙은 산 뒤에서 뭉게구름이 수채화처럼 피어오르고, 시골마을 장수나무 큰 그늘 아래에는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더위를 피하고, 마을 주변 가로수와 학교 교정의 나무에서는 쉼 없이 매미가 울어대고, 들판 벼들의 이삭은 익어가기 시작한다. 오후에는 검은 소낙구름이 일어 세차게 비를 뿌리면서 더위에 타는 자연을 식혀주고 지나가면, 논두렁 옆 수로나 개울에서 아이들이 가끔 미꾸라지를 잡기도하고, 해가 지고 나면 기온이 다소 시원해지므로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에 누워 맑은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별들과 은하수에 이야기를 실어보기도 한다. 옛 우리 시골의 여름 풍경이다. 과학의 발달로 시원한 바람이나 더운 바람을 마음대로 일으킬 수 있는 시대, 이제 옛 이야기일 뿐이다.
상하(常夏)의 나라인 말레이시아는 우리의 여름과 기후가 비슷하며, 낮의 온도는 항상 30℃를 넘고 자외선도 강하다. 밤이 된다고 시원하게 느낄 정도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하루 중 기온은 새벽녘이 가장 낮다. 해가 지고 오랜 시간이 지나야 기온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밤 기온이 25℃ 이상이면 열대야라고 부르지 않는가. 우리의 장마철이 이곳은 아직 건기이다. 그렇지만 하루에 한번정도 소나기는 내린다. 하늘의 구름 종류도 우리의 여름철 구름과 같다. 이곳에서는 일 년 내내 뭉게구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태풍이 없다. 이것이 우리의 여름과 크게 다른 점이다. 찌는 듯한 더위에 가뭄이 계속되면, 그 피해가 큼에도 불구하고 태풍이라도 와서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우리와는 다르다.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하늘은 푸르고 사방이 모두 초록인 세상이 이곳이다. 나뭇잎은 단풍도 들지 않은 채 초록 잎 그대로 낙엽이 되나 떨어진 후에는 마르면서 갈잎으로 바뀐다. 초록 낙엽이 지는 것이다. 가지가 한 장의 잎처럼 되어 있는 팜(Palm)나무 종류를 제외한, 무수한 잎들을 가진 나무들은 매일 수많은 낙엽을 지운다. 그러기에 공공장소에서는 아침마다 낙엽을 쓸어낸다. 세찬 소나기에 실려 떠내려간 낙엽들이 수로의 입구를 막게 되면 주변이 물바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 밖에 없는 이곳은 연중 모기와 벌레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방역 등 예방 활동을 해야 한다. 한 계절 밖에 없어 편리한 점도 많으나, 사계절 변화에 대응하며 생활을 하는 사람에 비해 일처리의 긴박성이 다소 떨어지는 이유가 변화 없는 자연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초록낙엽이 멋있게 생각될지 몰라도, 가을철 만산홍엽의 단풍진 낙엽이 항상 그립다. 단풍 잘 든 고운 낙엽은 꽃보다 아름답다 하지 않는가.
서태일 말레이시아 알루미늄(주) 공장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