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돌봄 주체 다시금 인식
성별 고정관념 떠나 돌봄 가치부여
돌봄노동이 보편적 삶의 방식돼야

▲ 이미영 울산여성가족개발원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장기화로 학교, 보육시설, 복지관 등의 운영이 어려워지게 되면서, 한국사회에서 돌봄 노동을 담당해오던 여성들의 삶이 무너져가고 있다.

일과 가정을 모두 병행해야하는 워킹맘,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책임져야하는 전업주부, 생계와 양육을 모두 책임져야하는 비혼모 등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모두 막막할 따름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긴급 돌봄을 지원하겠다고 나섰고, 기업에서는 재택근무나 시차 출퇴근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 모두 돌봄 재난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모두 충분하다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버텨낸다면 우리의 돌봄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까? 이 모든 문제가 그저 코로나로 인해 발생된 ‘해프닝’에 불과한 것일까?

코로나와 같은 재난이 여성의 삶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성평등 실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보고들이 이어지고 있으며, 한국사회 역시 예외는 아니다. 워킹맘들의 이중과업과 전업주부의 독박육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공교육이나 민간 서비스에 위탁했던 최소한의 돌봄마저 불가능해졌다.

2020년 3월 육아정책연구소가 코로나 확산에 따른 영유아 돌봄 양식의 변화와 일하는 부모의 대응을 설문조사한 결과, 학교와 유치원의 휴원 이후 영유아 돌봄에 대한 가족의 부담이 크게 증가했으며, 특히 처음 도입된 가족돌봄휴가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통계 수치는 자녀 양육 및 돌봄은 여전히 남성의 몫이 아닌, 여성의 몫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우리네의 돌봄 시계는 돌봄의 사회화 이전으로 돌아갔다.

대부분 남성보다 저임금 노동자인 여성들은 일을 그만두는 걸 ‘선택’하거나 친족 내 여성들의 도움으로 공적 돌봄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으로 일하는 대다수의 여성 노동자들은 유연근무제나 자녀돌봄 휴가의 대상조차도 되지 못한다.

돌봄은 여성에서 다시 여성으로 쳇바퀴 돌 듯 책임이 전가되고 있다. 결국 코로나로 더욱 심화된 여성의 위기는 돌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해온 돌봄 체계의 민낯이라 할 수 있다.

돌봄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게 하는 사회적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돌봄에 대한 평가절하는 그것자체가 ‘여성의 일’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젠더편견과 함께 기본적으로 개인이나 가족이 감당해야할 사적인 행위라는 인식에 기초한다.

이러한 편견과 인식으로 인해 국가의 돌봄 체계는 ‘돌봄의 공공성’이라는 미명 하에 돌봄을 받는 사람들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기 보다는 이들을 국가의 시혜를 받는 자로 위치 짓게 만들었다. 돌봄을 바라보는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만들어진 체계는 재난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위험사회에 대비하는 우리의 자세는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 돌봄에 대한 정의로운 배분과 평등한 돌봄으로 돌봄 노동이 남성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에게 보편적인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게 해야 한다.

즉, 돌봄 노동은 남녀 간, 가족 내, 생애주기, 공사영역 등에서 고르게 분배가 되어야 하며, 노동시장에서는 성별 구분 없이 누구라도 돌봄 시간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렇듯, 돌봄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돌봄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 부여와 함께 성별 고정관념의 해소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 없이는 다가올 위험사회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할 것이며, 반복되는 돌봄의 재난 속에서 여성의 삶은 점점 각박해질 것이 분명하다. 우리 모두가 코로나를 겪으면서 돌봄에 대해, 돌봄의 주체에 대해, 그리고 돌봄의 민주화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이미영 울산여성가족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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