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생활 불만족 야기하는 주범인
말수 줄이기 등 ‘노인칠계명’ 대신
인생경험·지식·지혜 나눌 수 있는
글쓰기 통한 노년기 행복찾기 제안

▲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나에겐 거의 득도(得道)의 경지에 다다른 절친(切親)이 있다. 그는 매일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2시에 일어난다. 그리곤 불교경전을 두 시간 읽고, 이어서 두 시간 명상을 한다. 이른 아침식사 후 혼자 쓰는 사무실 겸 독서실에 출근하여 다시 경전읽기로 시간을 보낸다. 그는 오전 9시쯤 되면 이미 하루가 지나가고 이후 다른 하루가 시작되니 하루에 이틀을 사는 느낌이란다. 내가 알기로 그의 그런 생활은 은퇴 후 시작했으니 족히 5년은 넘었다.

3년 전 쯤 그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부처님과 불경(佛經)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뭐냐?” “사람은 각자 나름의 색안경을 끼고(편견을 갖고) 만물을 본다. 물론 본인은 자기가 색안경을 끼고 있는지 모른다. 천태만상(千態萬象)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 색안경의 존재를 깨닫고 이를 벗어야(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가르침이더라.” 그런데 며칠 전 다시 만나 얘기해보니 그의 지식에 변화가 있었다. “더 공부해보니, 깨달음과 색안경을 벗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고, 절대행복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적극적인 해탈(解脫)의 메시지임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행복론(幸福論)의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주위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니, 행복한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들이 월등히 많고, 그 불행의 원인은 불만족(不滿足)에 기인한다고 설명하였다. 당연한 얘기라도 전문가가 얘기하면 의미하는 바는 평가절상(平價切上)된다.

잘 알려진 대로 예일(Yale)대는 ‘죽음’에 관한 연구가, 하버드(Harvard)대는 ‘행복’에 관한 연구가 가장 앞선 대학이다. 하버드대 행복연구를 이끄는 사람이 탈 벤 샤하르(Tal Ben Shahar) 교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전 세계 심리학 논문 중 95%가 ‘분노’ ‘절망’에 관한 것이고, ‘기쁨’과 ‘행복’을 다룬 것은 5%에 불과하다. 그는 ‘인간이 접하는 각종 부정적인 면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며 이의 해답을 얻으려는 부정심리학적 접근은 사람들에게 결코 행복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러한 질문 대신, 어떻게 하면 나의 장점을 살릴까, 어떻게 하면 기쁨을 누릴까라는 긍정심리학적 접근이야말로 행복에 이르는 길을 제공한다’라고 주장한다. 그의 강의는 인기발군이고, 강의를 들은 학생들 상당수가 행복해졌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전문가가 얘기하면 효과가 배가(倍加)된다.

이 두 도사들의 얘기를 종합하니, 불만족상황으로부터 탈피하려 노력하기보다 만족을 얻으려 노력해야 행복에 이른다는 것이렷다. 우선 노년불만족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성공적인 노후준비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주장한다. ‘노후자금 준비 관리법, 무릎관절 유지법, 홀로 재미있게 지내는 법’ 등 권고사항은 노후만족에 도움은 된다. 그러나 문제는 ‘세븐업(seven up)’으로 알려진 노인칠계명(老人七誡命)이다. ‘몸을 깨끗이 하라(clean up), 옷 잘 입어라(dress up), 말수를 줄여라(shut up), 모임에 적극 나가라(show up), 즐거워하라(cheer up), 지갑을 열라(pay up), 포기하라(give up)’가 그것이다. 한마디로 ‘은퇴(隱退)라는 말 그대로 조용히 뒤로 물러나야 젊은이들이 같이 놀아 준다’라는 말이다.

많은 노인들이 맘에도 없는 이 부정심리학적 계명을 지키려 노력한다. 그런데 이 노력이야말로 바로 불만족을 야기하는 주범인 것이다. 노인의 입장에선 지나간 인생경험을 통해 알게 모르게 축적된 지식과 지혜가 뒤늦게나마 명징(明徵)하게 빛을 발하며 이를 적극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충만한데, 사회는 ‘당신은 은퇴노년이니 입 다물고 후퇴하라’고 하니 ‘미치고 환장할 것 같은 답답함’이 바로 불만족의 요체라는 말이다. 지갑 잘 여는 노인주변엔 사람이 모이지만 말 많은 노인주변엔 사람이 안 모이니, 현실조차 이러한 답답한 정신적 괴리(乖離)의 치유를 도와주지 않는다. 긍정심리학적 차원에서, ‘노인칠계명’ 대신 혹시 ‘자유롭게 표현하라, 포기하지 말라, 더치페이하라, 꿈을 꾸라, 즐겨라, 멋 부려라, 요구하라’같은 ‘노인행복칠조항(老人幸福七條項)’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런가.

에그, 괜한 생각 때문에 오히려 불만족이 더 커질라. 타협책을 찾자. 말(言)대신 글(書)이다. 역사상 걸출한 사상가들이 노인이 된 후 어록이나, 책을 통해 그들의 뜻을 남긴 것도 말 적게 할 요량 때문 아니었을까. 앞으로 노후준비 사항에 글쓰기 연습을 추가해야 되겠다.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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