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만수 야구감독

올해부터는 야구를 많이 접해보지 못한 베트남을 위해 재능기부할 계획에 있다. 지난해 12월말부터 베트남 하노이 한국국제학교에서 체육선생으로 재직중인 이장형 선생과 많은 준비를 해왔다. 올해 안에 저의 목표는 베트남 야구협회 설립과 베트남 야구 국가대표 선수 모집, 그리고 야구장 부지와 함께 빠른 시일 안에 야구장을 짓는 것이다.

뜻하지 않은 신종 코로나 탓에 조금 늦어질 수도 있지만, 사태가 잠잠해지면 곧바로 베트남에 들어가 가장 먼저 국가대표 선출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라오스에서는 제인내 대표가 있었고, 베트남에서는 이장형 선생이 있다. 열정을 갖고 자기 일처럼 일할 수 있는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

이번 글을 올린 이장형 선생은 베트남 야구를 이끌어 갈 구상과 또 앞으로 있을 베트남 야구협회와 국가대표 야구선수를 선발하기 위해 베트남 정부 인사·관계자들과 날마다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베트남 고위 간부·기업들과 협의 중에 있는 야구장 건설 사업에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베트남 야구협회는 이미 스포츠 총국장으로 재직 중인 짠 득 판(Tran duc Phan)을 야구협회장으로 선출했다. 이와 더불어 협회 관련 임원들을 추가로 선임하고 있는 중이다.

베트남은 올해 야구협회 창설과 효율적 운영, 야구국가대표를 선발하고 대표팀을 운영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학교현장에서 체육을 가르치는 업(業)으로 살아온 지 16년의 시간이 흘렀다. 체육교육을 전공으로 선택해 학교를 다니는 동안 체육교사로서 과연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학생들이 체육이 가진 매력을 느끼고 평생스포츠로서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학교현장에서 체육을 가르쳐 왔다. 교육과정에 있는 여러 종목들을 학교상황과 요인들을 따져가며 선정하면서도 야구에 대한 애정이 유독 강했던 것은 아마 야구를 통해 내가 인생에서 배웠던 다양한 경험들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14년 봄, 잊지 못할 수업 장면이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야구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야구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시구 및 시타 행사를 ‘베이스볼 세레모니’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진행했다. 그 날 아침 출근 복장으로 아버지 한 분이 운동장에 오셨다. 그 팀의 주장을 맡고 있던 남학생의 아버지였다. 야구 등장음악을 틀고 학생들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한 아버지가 공을 던지고 그의 아들은 그 공을 꽤 큰 안타로 만들어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들어오는 그 아버지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고 많이 놀랐다.

“그 동안 직장 생활이 바빠 아들과 아무런 대화도 못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아들과 지금 이렇게 운동장에서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에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세대를 뛰어넘어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야구의 매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야구의 도시(球都)라고 불리는 부산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갔던 구덕야구장의 그 웅장함과 선수들의 호흡을 느끼며 거의 40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스포츠 신문을 보고 선수들의 타율과 홈런 개수를 친구들에게 설명해주고 선수들의 타격과 투구폼을 개인기 마냥 깔깔대고 선보였던 학창시절이 기억난다. 성인이 돼서도 야구에 미쳐 야구장을 찾고 있는 나에게 야구는 야구를 평생 업으로 살아오고 있는 야구인의 열정과 견주어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2016년 3월 베트남 하노이 한국국제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하면서 야구부를 담당하게 되었다. 비록 동아리 팀이었지만 그 열정만큼은 어느 엘리트 선수들 못지 않았고 베트남 학생들과 친선경기를 하고 대회에 참가했다. 야구를 통해 스포츠 교류를 통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이만수 야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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