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범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전 울산광역시 북구청장

지난달 27일 아침 울산박물관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귀가 번쩍 띄는 인터뷰를 들었다. 주민들과 극한 대립으로 치닫던 민원을 잘 해결해 주민과 관계기관이 상생협약을 체결했다는 인터뷰였다. 매우 신선했다. 마침 크리스 조던 특별전 전시를 주관한 기획사 대표가 동승하고 있었는데 그도 칭찬 일색이었다.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1500건 민원폭탄’ ‘갈등 심화’ ‘장기화 조짐’ 등의 제목으로 이어지던 민원이 ‘민원폭탄이 상생 모델로’ ‘송정펌프장 본보기로…민관 상생 협약’이란 제목으로 마무리 된 것이 사실이었다.

필자도 선출직 공직자 시절에 수많은 민원에 부딪혀 봐서 아는데 대립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 대부분의 공무원은 자기 손을 떠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타협점이 없어 보였던 악성 민원을 어떻게 상생협약으로 바꾸어낼 수 있었는지 몹시 궁금했다. 혹시 미화시킨 자화자찬은 아닐까 하는 의문도 생겼다. 하지만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점의 상황과 이해당사자들의 입장, 대안을 마련하고 합의를 이루기 위한 과정까지 관련 기사를 다 찾아보면서 감동으로 변했다. 그리고 지역 언론에서 보도한 한 장의 사진 즉, 주민들이 내걸었던 결사반대 걸개그림을 울산시장, 북구청장, 시의회 의장, 북구의회 의장, 주민대표들이 함께 떼어내는 사진이 모두가 사실임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언론에서는 극적인 반전을 이뤄낼 수 있었던 요인으로 담당 공무원과 주민대표들의 끝장토론과 시설물을 지하화시켰다는 것을 꼽았다. 맞는 분석이다. 울산시와 북구청 담당 공무원들이 주민대표들과 끝장토론을 진행했다는 시도 자체가 매우 진취적인 일이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민원의 경우 공무원들은 주민대표들과의 직접 대화를 몹시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시도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당초 지상 11m 높이로 설계되어 주민들 거부감이 컸던 해당 시설물을 지하시설로 변경한 것도 합의를 이룰 수 있었던 요인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필자는 담당 공무원들이 송철호 시장의 슬로건이자 시정철학인 ‘시민과 함께’ 문제를 풀려고 노력한 변화된 자세를 추가하고 싶다.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먼저 주민대표들에게 끝장토론을 제안한다는 것은 원칙과 소신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맡은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대안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일이 더 꼬이는 위험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지하화 방안을 어느 일방이 협상안으로 제시한 대안이 아니라 끝장토론이라는 열린 소통을 통해 상호 이해와 신뢰를 회복한 가운데 도출했기 때문에 대타협을 이뤄냈고, 상생협약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이해당사자들 모두가 노력한 결과지만 필자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것은 방송 인터뷰에서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민원을 어떤 마음으로 상대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법과 원칙은 분명히 지키되 우리를 힘들게 하는 민원인들도 결국은 우리가 보호하고 지켜야 할 우리 시민들”이라는 답변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모범답안으로 작성한 원고’를 읽을 때 느껴지는 작위적인 어색함이 아니라 온전한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원만한 타협을 이룬 공을 북구청장과 지방의원, 함께 한 팀원들에게 돌리는 겸손함이 담겨 있었다. 용케 그 인터뷰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듯 악성 민원폭탄을 상생협약으로 이끌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바로 담당 공무원들이 원칙은 분명히 지키면서도 민원인을 내 이웃이라는 마음으로 진정성을 가지고 소통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대타협의 결실로 절감된 예산을 주민들을 위한 공익시설 재투자로 돌린 것도 멋진 결말이었고, 결사반대 현수막을 민관 대표가 함께 철거하는 이벤트는 화룡점정이었다. 주로 비판과 반대를 하던 입장이었는데 악성 민원폭탄을 상생협약으로 해결한 사례는 널리 알려야 할 귀감이라 생각되어 진심에서 우러나는 갈채를 보낸다.

이상범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전 울산광역시 북구청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