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부동산 정책
이틀만에 국회 상정·의결, 공포·시행
‘땜질식 졸속 정책’ 새로운 문제 야기

▲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오래 전의 일이다. 선거에 당선하고 취임한 지 얼만 안 된 기초자치단체장을 만났는데, 결재하기가 겁난다는 것이다. 취임 초기라 의욕도 넘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의 대답이었다. 자신이 사인을 하면 그것으로 정책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데, 혹시라도 정책이 의도한 대로 작동되지 않아 주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갈까 봐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꼼꼼하게 따져보고, 돌다리도 두들겨서 건너가는 심정으로 결재를 하곤 했다는 고백을 들었다.

기초자치단체장은 불과 인구 이삼십만 정도의 주민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이에 비해 수천만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중앙정부와 국회가 최근 부동산 대책을 결정하는 과정을 보면 정책을 너무 안이하게 보는 것 같아 우려가 크다. 단 이틀 만에 부동산 관련 법안이 국회에 상정·의결되고 국무회의에서 공포·시행됐다. 아마 우리나라 의정사상 초유의 일일 것이다. 과연 이들 법안이 폭등하는 수도권 집값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는 차치하고, 정책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정책을 이렇게 결정해도 되나 하는 회의(懷疑)가 든다.

사회문제가 발생하면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의 존재이유이다.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두고 행정조직과 공무원을 두는 것도 다 이를 위한 것이다. 정부가 만드는 정책이 의도한 대로 효과가 발생해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정책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정책에는 항상 긍정적·부정적 측면이 공존한다. 정책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으면 또 손해를 보는 사람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한 집단에게 유리하면 다른 집단에게는 그만큼 불리한 것이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정책이다. 정책은 시간적으로도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단기적으로는 매우 훌륭한 정책으로 보여도 중장기적으로는 형편없는 정책이 될 수도 있다.

정책은 이와 같이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기 때문에 정책결정의 절차를 마련해 놓았다. 행정부 내부에서는 관련 부처 관료들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해당 사항을 면밀히 검토해 안을 만들고,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국회에서는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여야 간의 토론과 협의 과정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들이 불필요하고 시간낭비로 보일 수도 있지만, 만에 하나라도 불합리한 정책이 결정되었을 때 나타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적인 과정인 것이다.

특히 이번 부동산정책과 같이 국민들의 경제생활에 미치는 범위가 넓고, 사회적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정책일수록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책의 부작용과 폐해에 대해 보다 충분한 검토와 조정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강조되고 있는 것이 바로 증거기반 정책결정(evidence-based policy making, EBPM)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실증적인 조사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을 활용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 고려, 관행적 판단과 같은 검증되지 않은 주관적, 이념적 요인을 배제하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연구에 의한 근거를 강조한다.

부동산 가격 폭등과 관련한 변수는 너무도 많다. 교육, 금융은 물론이고 심리적 측면도 강하다. 이들에 대한 종합적·체계적 검토를 통해 폭등의 원인과 합리적인 해결책에 대한 ‘증거’를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협의와 토론을 거쳐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절차도 민주적이며 정책의 합리성도 높일 수 있는 접근방법이다.

이틀 만에 정책을 처리한 정부와 여당은 추후 문제가 생기거나 부작용이 발생하면 즉시 새로운 정책대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오만한 생각이다. 정책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땜질식 졸속 정책은 기존 문제를 더 악화시키거나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뿐이다. ‘증거기반 결정’까지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정책 앞에 겸손했던 기초자치단체장의 자세를 되새기기 바란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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