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운 울산옹기박물관 큐레이터

코로나19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 일상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비대면 문화를 선호하게 됐고, 온라인 공간을 주 무대로 삼아 다양한 방식으로 흐름을 주도하며 디지털 문화로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그래서 중요하게 부각된 점이 바로 가상공간에서도 서로 단절된 느낌이 들지 않도록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연결해 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절미항아리를 소개할 수 있다.

1960년대 정부 주도 하에 범국민적으로 쌀을 절약하자는 절미(節米)운동이 시작됐다. 광복 후에도 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됨에 따라 곡물 가격이 급등하고, 기아와 빈곤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쌀을 원료로 공급되는 모든 음식을 자제하는 것으로 가정에서는 잡곡을 넣어 밥을 해야 했고, 술이나 떡, 과자 등의 제조는 금지됐다. 이 때 등장한 것이 절미항아리다. 정부의 시책에 따라 각 집에는 절미실시가정이라는 표지가 붙어있었고, 부엌에는 ‘절미저축’이라고 쓰인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모두를 생각하는 따듯한 마음이 담긴 그릇인 셈이다.

▲ 1962년 울산시 학산동 절미운동 진척조사

(출처-공공누리)
 

절미항아리는 지역에 따라 ‘좀도리’ 또는 ‘종돌’이라 불리기도 했다. 부엌일을 맡았던 여인들은 쌀을 짓기 전에 한 줌씩 덜어 이 절미항아리에 따로 보관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절미항아리의 쌀이 많아지면 절미저축통장을 만들거나 혹은 주민들과 의논하여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공동자금으로 사용했다. 절미항아리는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에 검소한 삶을 습관화하여 나눔과 배려의 마음으로 서로를 이어주었다. 정성 들여 모은 쌀로 복을 나누었듯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에 따뜻한 말 한마디의 배려로 소소한 일상의 나눔을 실천해 보는 건 어떨까. 문소운 울산옹기박물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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