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울주군 삼동면의 도예 장인들
­(하)청암요·삼동요·백상요·하잠요

▲ 청암요의 장상철 장인과 그의 작품 ‘장군병과 무유다기’.

울주군 삼동면 하잠리 89 일대
을산시 기념물 제37호에 지정된
조선시대 가마터 요지군으로
중앙·지방관청에 도자기 공납
故 신정희 옹과 인연맺은 공통점
현재 일곱의 사기장들 모여 살아

‘울산의 쟁이들’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저 담담하게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울산을 기반으로 오랜 기간 전통문화 분야에 몰두하며 최고의 열정과 기량을 보여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생애와 기예를 소개한다.

▲ 청암요의 장상철 장인과 그의 작품 ‘장군병과 무유다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이 유서 깊은 도자기 지역임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삼동면의 하잠리 89 일대는 <울산시 기념물 제37호>에 지정된 조선시대의 가마터 요지군(窯址群)이다. 이곳은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139개의 자기소 중 하나인 ‘언양 자기소’로, 분원이 설치되기 이전 조선 초기 중앙과 지방 관청에 도자기를 공납하던 곳이라 짐작된다. 그리고 오늘날 왕방요(신용균)·조일요(정재효)·지랑요(신봉균)·청암요(장상철)·삼동요(이인기)·백상요(이충우)·하잠요(김경남), 이렇게 전통가마를 고집하는 일곱의 사기장들이 모여 살고 있으니, 이 땅의 기운도 보통은 아닌 것이다. 이곳의 장인들은 우리나라 대표 도예가 고 신정희 옹과 인연이 있으니, 청암요의 장상철 장인 또한 그의 제자이자 큰며느리의 동생이라는 인연을 맺고 있다.

모름지기 차도구는 차맛을 잘 내야한다는 신념으로 본질에 충실한 그릇을 만들고자 노력하며, 화려한 장식이나 꾸밈보다는 흙과 유약과 불의 조합으로 나타나는 재료 본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나는 도자기를 볼 때 느낌으로 보거든요. 흙의 느낌이나 불의 느낌, 불을 땔 때마다 기대감이 있어요. 이번엔 또 어떤 느낌일까. 그런 것 때문에 작업이 힘들어도 재미를 느끼면서 하는 거죠. 불을 땠을 때 그릇에 그런 따스한 느낌이 나오면 기분이 좋고 하니까. 이 일은 스스로 재미를 못 느끼면 그냥 노가다고 힘든 일이에요.”(장상철)

▲ 삼동요의 이인기 장인과 그의 작품 ‘회령유항아리’.

삼동요의 이인기 장인은 신정희 장인과 직접적인 인연은 없지만, 그의 셋째 아들 신경균 장인 그리고 조일요의 정재효 장인과 학교 선후배로 엮여 있다. 그는 스스로 행복하고 즐겁기 위해 그릇을 만들며, 그렇게 나온 그릇으로 사람들이 기쁨을 느끼는 것에 족하다 한다. 그렇지만 그의 그릇을 대하는 태도는 사실 누구보다 치밀하고 열정적이며 허투름을 허용치 않는 매서움이 서려 있다.

▲ 삼동요의 이인기 장인과 그의 작품 ‘회령유항아리’.

“장작이 낼 수 있는 분위기는 다릅니다. 제가 조선의 달항아리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일까요. 품어져 나오는 기운이 대단합니다, 옛날 사람들의 그릇에서 나오는 기운은. 그 도공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거죠. 흙이 주는 건 참 대단합니다. 제 맘대로 할 수 있잖아요. 제가 흙한테는 신이거든요. 이게 제 자식이에요. 우주적으로 보면 흙이나 저나 똑같아요.”(이인기)

▲ 백상요의 이충우 장인과 그의 작품 ‘회령다완’.

백상요의 이충우 장인은 신정희 장인의 제자이다. 10년의 사문(寺門) 생활을 뒤로 하고 속세로 돌아온 그는 2002년 도예의 세계에 입문하여 삶의 수련을 이어왔다. 스승께서는 사기장 생활이 불가의 삶보다 수월할 것이라 하였지만 이 세계 또한 하면 할수록 더욱 알 수 없음은 매한가지다. 그저 나무를 준비하고 불을 지키는 오롯한 마음을 놓지 않으려 애 쓸 뿐이다.

▲ 백상요의 이충우 장인과 그의 작품 ‘회령다완’.

“전통가마는 다른 가마에 비해 파손률이 높아요. 그래도 의도하지 않던 좋은 것들이 나왔을 때 느끼는 희열감 때문에 장작가마를 하게 되죠. 불에 직접 닿은 그런 느낌들이 피부로 느껴지고 눈으로도 차이가 보이니까요. 불의 느낌은 앞면과 뒷면이 그냥 틀려요. 불이 지나간 흔적이죠, 불이 이렇게 흐르면서 앞쪽은 세지고 뒤쪽은 불을 덜 받아요.”(이충우)
 

▲ 하잠요의 김경남 장인과 그의 작품 ‘흑유정병’.

하잠요의 김경남 장인은 신정희 장인의 조카이면서 조일요 정재효 장인의 처남이자 제자이다. 1993년 조일요의 가마를 쌓을 때 돕고자 삼동에 들어와 시작된 도예 인생이 오늘날까지 이어질지 당시에는 미처 몰랐다. 그는 또한 지난 20년 간 다도를 배우며 도예와 다도를 삶 속에 녹여내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상징적인, 문양이 없어도 형태감이 주는 편안함을 지닌 그릇을 꿈꾼다.

▲ 하잠요의 김경남 장인과 그의 작품 ‘흑유정병’.

“시간이 흘러 나를 기억할 수 없는 때가 오더라도 그릇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도록 표현하고 싶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다도 역시 뭘 보여주는 것이 아닌, 손님들이 그릇을 보러 오면 내가 배운 그대로 차 한잔 드리고, 그런 것을 생활화하며 저를 나타낼 수 있는 무언가로 남게 하고 싶습니다.”(김경남)

애초에 흙으로 무엇을 만든다는 것은 조물주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흙으로 그릇을 만들어 내었다. 불에 강한 흙을 골라 곱고 부드러운 상태가 되도록 수없이 체에 거르고 그것을 성형하여 장작불에 구워내기까지, 하나하나 중요하지 않은 과정이 없다. 수천 번의 물바가지질로 잿물을 걸러 유약을 만들고 틈틈이 땔감을 마련하는 일들은 덤이다. 여기에 전통가마를 고집하려면 몇 년을 바짝 말린 장작과 그것을 쌓아 놓을 넓은 땅이 필요하고, 불을 피울 때 연기로 인한 주변의 민원을 감당해야 하며, 수십 시간을 쉬지 않고 뜨거운 불 앞에서 버텨야 한다. 심지어 이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도 작품의 성공은 하늘에 맡겨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불 앞에서 기다린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마친 뒤, 그 길의 끝에서만이 얻을 수 있는 차마 예상도 못한 나의 그릇을.

 

▲ 노경희 전문기자·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글= 노경희 전문기자·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사진= 안순태 작가·장인들 제공

표제= 서예가 김중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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