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탈리아

▲ 시에나의 중심, 캄포광장. 팔리오(Palio)라는 말 경주 경기가 열릴 정도로 넓은 광장이지만 헤벌어짐 없이 안정감과 긴밀함, 생동감까지 연출한다.

중세 양식 보전한 성채도시 시에나
순례길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성장
강한 결속력 가진 공동체로 거듭나
도심 교통 요충지에 위치한 캄포광장
시민들 연대로 이뤄낸 공화주의 상징
600여년 지난 오늘도 정신적 구심점

 

시에나(Siena)는 구릉지에 조성된 성채도시다. 토스카나에서 이만큼 중세도시의 모습을 온전하게 보존하는 도시도 드물다. 도시경관이나 건축적 장치만이 아니다. 지형에 대한 태도와 그들의 사회적 구성을 반영하는 도시공간의 구축 등 중세적 삶의 환경을 온전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 피사나 피렌체의 돈 냄새 물씬한 세련됨에 비하면 낡고 허름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날 것’ 그대로의 중세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시에나만한 것이 없다.

12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시에나는 별로 주목할 것이 없는 작은 성채도시에 불과했다. 로마로 향하는 순례길이 이 도시를 지나가게 되면서부터 도시성장이 시작된다. 교통의 요지로서 상업 발전이 이루어지고 주변의 여러 지역을 병합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12세기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아 자체적으로 영주를 선출하고 주화를 주조할 권한까지 확보했다. 현재의 도시모습은 시에나가 무역과 상업으로 번성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시에나가 자리한 작은 언덕은 해발 320m에 불과한 낮은 구릉지이건만 도시는 철옹성처럼 위풍당당하다. 이러한 언덕 성채의 형식은 이후 토스카나 지역 중세도시의 모태가 된다. 그러나 시에나가 단번에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주변의 여러 지역이 흡수 통합되면서 여러 변화를 겪었다. 11세기 말로부터 15세기까지 300년에 걸친 도시구조의 변화에도 도시경관의 콘텍스트를 놀라울 만큼 잘 지켜왔다는 점은 경탄할 만하다.

계곡 건너로 펼쳐진 시에나의 전경은 스페인의 톨레도만큼이나 충격적이다. 붉은 벽돌과 검은 기와지붕의 건물들이 등고선을 따라 열을 짓는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회화이며, 조각이며, 건축이다. 동일한 재료의 건물들이 다양한 형태로 하나의 풍경을 구축했다. 마스터플랜 없이 오랜 세월을 두고 한 조각씩 이어 만든 조각보 같지만 전체의 조화를 거스르는 건물은 단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다.

다가 갈수록 지형과 길과 건물의 관계가 드러난다. 건물들은 지형의 경사면을 따라서 구불거리며 연결된다. 하나의 긴 건물 지어 나누어 쓴 것인지, 아니면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건물들을 이어 붙여 만든 것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분명한 것은 건물들이 입체적으로 얽혀 있다는 점이다. 같은 재료를 사용하되 형태적으로는 개성을 추구했다.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 얽혀 하나의 도시를 만든 이들의 사회적 속성을 잘 보여준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이러한 공동체성은 이들이 살아온 역사와 관계를 반영한다. 시에나는 17개의 ‘콘트라다(Contrada)’라는 자치구가 모여 구성된 중세도시다. 콘트라다는 기독교의 교구에 해당하는 구역인데,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자기가 속한 콘트라다에서만 치를 정도로 귀속감이 강하다. 독립적이고 대등한 콘트라다들이 연합하여 도시의 공화주의적 정치체제를 만들었다. 각 구역들은 뚜렷한 개성과 경쟁의식을 갖지만, 외부의 적에 대해서는 강한 결속력을 발휘했다. 시에나가 13세기에 피렌체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배경이기도 하다.

해자로 사용되었을 법한 계곡을 지나 성으로 올라간다. 성문과 성벽은 성 밖의 주택가 속에 감추어져 있다. 성문을 지나서도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잠시 걷다보면 골목사이로 환하게 전개되는 공지가 나타난다. 그 빛을 따라 좁고 어두운 골목을 나서는 순간 잔뜩 긴장했던 신경세포가 한꺼번에 열리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스케일의 극적인 변화가 주는 충격과 희열이다.

캄포광장, 바로 시에나의 중심이다. 이 광장은 여러 다른 구역으로 통하는 골목의 교차로에 위치한다. 그 규모는 팔리오(Palio)라는 콘트라다 대항 말 경주 경기가 열릴 정도로 넓다. 경주 때에는 광장 중앙에 2만8000명, 광장 주변에 3만3000명을 수용할 정도라고 한다. 매머드 스타디움 규모라고나 할까. 그 정도의 규모라면 자칫 공간이 공허해질 수도 있는 법, 하지만 캄포광장은 추호의 헤벌어짐도 없이 긴밀한 느낌이다. 시청을 중심으로 뻗는 부챗살 모양의 선과 조개껍질 모양의 곡면 바닥으로 인해 포근한 안정감을 준다. 중심을 향해 경사지게 처리한 바닥이 다이내믹한 생동감까지 연출한다. 가히 광장 설계의 귀재들이 아닌가.

광장은 피자 조각처럼 9개의 면으로 구획되어 있다. 9인 위원회가 통치하던 13~14세기에 이를 상징하여 만든 것이라 한다. 시민들이 연대하여 이루어낸 공화주의 도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광장만이 아니라 도로망이나 공공건축 등 도시의 골격이 이 시기에 갖추어진 것을 보면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이 토대가 되었음에 분명하다. 경사가 모이는 중앙에 시청과 만자탑이 서 있다. 높이 102m에 이르는 거대한 만자탑, 보통 건물 33층에 해당하는 아찔한 높이를 자랑한다. 단연코 광장의 규모에 비례하는 시각적 오브제라 할 수 있다.

캄포광장은 6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 도시를 대표하는 장소로 지속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공동체적 역사와 삶을 공유하는 장소이며, 아직도 시에나 사람으로서 연대감과 귀속감의 근거가 된다. 우리도시에서는 어떤 장소가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표현하고 있을까. 관청의 권위주의적 위용이나 자본을 과시하는 천박한 건물로는 결코 시민이 주인인 공동체적 도시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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