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함께 공유하는 일상 속 정원

▲ 박동근씨가 비닐하우스 옆 텃밭에 조성한 튤립밭. 등산길에 나선 시민들과 마을주민들이 좋아한다며, 박씨는 해마다 그 면적을 늘려가고 있다.

농지 가장자리에 튤립 심고 가꿔
주민들과 즐거움 나눈 박동근씨
수십년간 애지중지 돌봐온 분재
대문 활짝 열고 개방한 박국이씨
이들처럼 정원 공유 더 많아지게
울산 지자체 정원도시정책 펼쳐

북구, 정원계 신설 등 가장 적극적
아름다운 정원 콘테스트 진행하고
꽃피는 우리동네 만들기 지원 등
생활 속 정원정책·사업 활발 추진

#울산 중구 유곡동 최제우유허지로 들어가는 초입.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절터골’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산과 산 사이에 끼어있는 형태로, 농지가 길쭉하게 이어진다. 이곳은 중구 입화산, 성안 너머 길촌·성동·풍암마을, 더 멀게는 울주 서사마을로 뻗어가는 등산길이 시작되기에 사시사철 사람들 발길이 적지 않다. 그 곳에서 한평생 농사를 짓고 살아 온 박동근(83)씨는 본인의 농지 가장자리를 튤립밭으로 조성했다. 처음에는 서너 포기로 시작했다. 그런데 주변을 지나는 등산객과 주민들 반응이 예상외로 너무 폭발적이었다. 이듬해부터 튤립밭 면적을 조금씩 늘리기 시작했고, 올 봄에는 튤립 모종 수백여 포기를 직접 구매해 도로를 따라 심고 가꿨다. 튤립이 진 이후에는 목단, 수국, 백일홍, 장미 등이 꽃을 피우고 있다. 한평생 흙과 함께 한 농부인지라 박씨의 손길을 받고 자란 화초는 유난히 싱싱하고 건강한 자태를 보여준다. “코로나 때문인지, 올 봄부터 지금까지 입화산 등산가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꽃을 보고 좋아했다. 농사일만큼 화초 가꾸는 일도 재미가 있다”고 했다.

#울산 남구 신정4동 주민센터 인근 2층 단독주택. 박국이(63)씨의 집이다. 그는 40년간 중등교사로 일하다 5년 전 울산동중학교 교장으로 퇴직했다. 그는 교직생활 내내 꽃과 나무를 기르는 분재에 심취해 취미생활로 이어왔다. 40년 가까이 하다보니, 이미 전문가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수목과 화분이 5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관리 수종이 방대해졌다. 가재도구 보다 화분이 더 많아 이제는 빈틈조차 찾기 힘들다. 수십년간 손길닿은 분재 때문에 퇴직 후 계획했던 이사도 포기해야 했다. 기품있는 해송은 물론 각양각색의 영산홍도 피었다 지기를 반복한다. 처음에는 귀하디 귀한 나무와 화초들을 누가 훔쳐갈 것 같아서 대문을 꽁꽁 잠갔다. 그러던 어느날 이 좋은 걸 혼자 보는게 무슨 소용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이 기쁨을 함께 누릴 기회를 줘야겠다 싶어서 이제는 대문을 열어둔다. 언제라도, 누구라도 들어와 구경하도록.” 그래서 ‘공감분재’라는 간판도 직접 만들어 달았다. 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집안으로 들어와 꽃과 나무를 공유해도 좋다는 의미다.

우리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본인의 공간에 꽃과 나무 등 식물을 들여와 이를 가꾸는 사람들이 많다. 하다보니 경험과 지식이 쌓이게 되고, 점점 즐거움이 커지게 마련이다. 전문성이 조금씩 늘면서 공간을 가꾸고자하는 의욕도 자란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혼자만 알고 있는 즐거움을 가족과 이웃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 것이다.

태화강국가정원 지정 이후 울산시와 각 구·군은 너도나도 정원도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본보 연재 ‘정원도시울산 시민손으로!’가 시작된 이후 “그 동안 공원 면적을 늘려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자는 소리는 많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시·구·군이 추진하는 정원도시 사업과 무엇이 다르냐”고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다.

‘공원’은 국가나 지방공공단체가 나서서 공중의 보건이나 휴양, 놀이, 문화생활을 위해 공적예산을 투입해 정원이나 유원지, 그밖의 시설을 가꿔놓은 곳이다. ‘정원’은 ‘집 안에 있는 뜰이나 꽃밭’이다. 결과적으로 정원도시를 만드는 일은 시민 스스로 본인 주변의 공간을 원예 활동 결과물로 가꾸고, 이를 모든 이들과 공유하려는 사람이 늘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 박국이씨가 자택에서 가꾸고 있는 분재들. 500기에 이르는 화분마다 수목 및 화초가 가득하다. 박씨는 주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대문을 활짝 열고 ‘공감분재’라는 간판을 달았다.

기존의 ‘공원’은 언제나 시·구·군 공무원들 손에 의해 만들어지고 가꿔져 왔다. 하지만 정원도시는 이 도시에 살고있는 시민들 역할에 무게가 더 실린다. 그래야 도심과 시골, 농촌과 산촌, 마을과 골목, 옥상과 텃밭에 이르기까지 발길 닿는 곳, 눈길 가는 곳마다 화초의 생기와 자연이 주는 위로의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시·구·군의 정원도시정책은 앞서 밝힌 것처럼 한평생 일궈온 농지 한귀퉁이를 꽃밭으로 가꾼 박동근씨, 수백여개 화분을 주민과 공유하고자 대문 빗장을 연 박국이씨와 같은 시민들이 더욱 늘어나게 하는데 초점이 맞춰진다.

대표적으로 울산 북구는 최근 정원도시의 가치에 눈을 뜨고, 조직 내 ‘정원계’를 새로 만든 뒤 주민생활 깊숙이 파고드는 정책과 사업을 펼치고 있다.

우선 ‘2020 아름다운 정원 콘테스트’를 추진하는 중이다. 단독주택 마당과 옥상, 벽면 등 실외공간에 조성한 정원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분야, 마을 자생단체 및 공동체 조직이 조성한 마을정원 및 골목정원을 대상으로 하는 단체분야, 카페나 음식점, 기업 등이 조성한 정원을 대상으로 하는 상가분야 등 3개 분야로 나눠 공모를 진행한다. 참여를 희망하는 개인과 단체, 상가는 10월31일까지 북구청 블로그(blog.naver.com/usbukgu) ‘2020 아름다운 정원 콘테스트’ 부문에 직접 찍은 사진을 올리면 된다. 북구는 연말 심사를 통해 분야별 3곳의 정원을 선정해 시상하고, 울산시 민간정원 및 공동체 정원으로 등록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꽃피는 우리동네 만들기 프로젝트’도 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사계절 꽃이 만발한 동네를 만들도록 돕는 사업이다. 1동 1단체를 지정하는데 농소1~3동, 강동동, 효문동, 송정동, 양정동, 염포동이 이미 참여했고 올 연말까지 도로변이나 자투리땅에 꽃길이나 꽃밭을 가꾸는 활동을 펼치게된다.

무엇보다 이름만큼 예쁜 ‘꽃생활화’ 사업도 있다. 선물 위주의 꽃소비 패턴을 일상생활 속 꽃소비문화로 전환시켜 우리 생활을 화초로 아름답게 가꾸면서 북구 중심의 화훼산업 활성화도 함께 도모하자는 취지다. 사무공간에 꽃을 가져다놓는 ‘원테이블 원플라워’, 각 가정으로 꽃을 배달하는 ‘원홈 원플라워’ 사업이 대표적이다. 꽃을 사랑하고 주변에 항상 두려는 습관은 어릴 적 부터 길러주어야 하는데, 북구 초등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에게 미니꽃다발을 만들게 하거나 꽃모종을 심게 하는 원예체험활동을 지원하는 어린이꽃생활화교육사업도 병행한다.

이상균 울산북구 공원녹지과(정원) 주무관은 “‘꽃과 정원의 도시’ 북구는 주민참여 없이 불가능하다. 각종 사업은 정원문화확산을 위한 마중물이고, 주민 스스로 공공의 ‘가드너’가 될 수 있도록 교육지원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북구 꽃도시 조성 및 지원조례 취지에 따라 생활정원이 정착하도록 기존 사업 이외에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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