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원 K Classic 콘텐츠연구소 소장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교수

코로나 재확산이 아슬아슬했던 8월16일 반고사와 태화사가 있던 울산 지역 답사를 다녀왔다. 가히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부를만한 울산대곡박물관 신형석 관장과의 시절인연은 그렇게 찾아왔다. 원효와 자장스님의 자취를 답사하자고 의기투합해 서울과 김해, 울산에서 모인 우리 사부대중 7명은 신 관장의 역대급 안내와 해설로 울산을 그야말로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됐다. 이제 울산답사팀을 대표해 ‘울산 용비어천가’를 불러볼까 한다.

나의 답사여행 원칙은 나름 확고하다. ‘연고자, 연고지 중심!’ 없으면 만든다. 해외배낭여행 원조세대인 나에게 ‘여행이란 빚지러 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연고자가 되어 두고두고 갚는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리하여 먼저 경상일보의 태화강 특집 기사를 인상깊게 읽는다. 그 기사를 쓴 일면식도 없는 이재명 논설위원께 연락해 ‘연고자’인 신 관장을 소개받는다.

그렇게 시작된 울산 답사. 처음엔 원효가 살면서 두 권의 책을 집필했다는 ‘반고사 터’만 볼 계획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삼국유사 속 원효에 대한 책을 마무리 중이라 모든 퍼즐조각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는 대략 원효에 관련된 10가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다시 세분하여 20가지 이야기로 촘촘히 엮어 원효를 재조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틈나는 대로 삼국유사와 원효에 관련된 유적지를 일삼아 놀이삼아 몇 년전부터 답사를 다니고 있다.

서울토박이인 나는 자장이 창건한 태화사 터가 있던 태화강과 반고사가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삼국유사 속 자장에 관한 책을 쓰면서 꼭 보고 싶었던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도 이 기회에 친견하기로 했다. 아마도 울산 역사 문화에 대하여 긍지와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신 관장은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아침 일찍 도착해 천전리 울산대곡박물관에서 사전 오리엔테이션 강의를 받은 우리는 먼저 가까이에 있는 천전리 석탑 부자재를 둘러보고 천전리 각석을 답사했다. 반고사터를 발굴하다가 찾아낸 천전리 유적은 선사시대 공룡발자국이 선명하고 진흥왕순수비로 유명한 신라시대 진흥왕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그려진 6세기의 기록이었다. 어제 쓴 일기처럼 여섯 살 왕자 심맥부지와 그 어머니 지몰시혜비, 외할머니 법흥왕비 부걸지비가 함께 행차했다는 기록도 흥미로웠고 진흥왕이 어린 왕자시절 돌아가신 아버지 입종갈문왕이 사부지갈문왕이란 이름으로 남아 추억하는 글도 인상깊었다. 특히 사부지갈문왕이 지소태후가 아닌 ‘벗누이(友妹)’ ‘어사추여랑’과 놀러왔다는 내용은 뭔가 로맨틱한 상상을 일으켰다. 그때가 음력 525년 6월과 539년 7월 한여름이었으니 딱 이맘때이다. 일행과 함께 한 여름 물 맑고 푸르른 피서지 소풍이 그려지고 선사시대 뛰놀던 공룡 발자국까지 그 시절 풍류가 눈에 선했다.

이 울주 천전리와 가까운 거리에 원효가 살았다는 반고사터 반구대가 있다. 지금 반고사터는 간곳없고 얼핏 수십종의 고래가 그려진 ‘반구대 암각화’만 떠올리게 되지만 이 산천경개 좋은 곳에서 원효는 치열하게 수행하고 책을 쓰며 삼십대를 보냈다는 것이다.

삼국유사에 전하기를 반고사는 낭지스님이 원효에게 <초장관문(初章觀文)>과 <안신사심론(安身事心論)>을 저술하게 했다고 한다. 원효는 자신을 사미라 칭하며 공손히 시 한 수를 적어 책을 바치고 있다.

원효가 살던 영축산 반고사에서 동쪽 태화강가에 살던 스승 낭지에게 책을 보냈다는 삼국유사 속 ‘낭지승운보현수’를 떠올리며 우리는 자장이 창건한 태화강 태화사터에 새로 조성한 태화루를 보러갔다. 여기서도 신 관장의 해설을 통하여 태화루를 짓기까지 태화강 전망좋은 곳에 있던 예식장건물 매입의 어려움부터 공사과정까지 잘 정리되어 있는 전시관과 그 현장을 생생히 참관할 수 있었다. 특히 십리대숲길에 펼쳐진 태화강 해바라기밭과 여름꽃들의 향연은 폭염 속에서도 우리의 산책을 막지 못할만큼 매력적이었다.

그동안 울산하면 떠오르던 정유공장과 공업도시의 이미지를 일거에 불식시킨 울산 반고사와 태화사 답사. 선사시대 공룡이 뛰놀던 계곡에 어린 왕자 진흥이 소풍을 오고, 반고사 사미원효가 태화강가 혁목암 스승 낭지에게 책을 써서 바치는 역사와 문화 진진한 도시로 매직을 부렸다. 이 아름다운 답사여행의 빚을 졸필로나마 원효가 말한 ‘태화강 물방울’만큼 갚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21세기 울산에는 코로나19도 비껴가고 염천 삼복 더위도 아랑곳 않는 울산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정진원 K Classic 콘텐츠연구소 소장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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