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모 현대청운중 교사

어느 무기 상인이 “뭐든지 뚫는 창 사세요. 뭐든지 다 막는 방패 사세요.” 외치다가 망신당한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모순(矛盾)이다. 필자가 학생 시절 “창이 반틈만 들어가면 둘 다 맞는 말 되잖아요.” 나름 의견을 제시했다가 핀잔만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반틈만 들어가면 못 뚫은 거고, 방패가 이긴 거다.

창과 방패처럼 승패가 갈리는 것이 인생사다. 그리고 우리는 살면서 둘 중 하나를 택해야하는 상황에 자주 놓이고, 옳은 선택을 위해 머리를 쥐어짠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된장찌개냐 김치찌개냐, 사랑이냐 우정이냐, 양자택일은 늘 힘들다. 하긴 4살짜리 아이조차 엄마랑 아빠 중에 누가 좋은지 답해야하는 세상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정답이 뒤바뀌기도 한다. 흥부와 놀부를 살펴보자. 옛날에는 흥부는 본받아야 할 착한 사람이고, 놀부가 나쁜 놈이었다. 요즘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저는 놀부처럼 살래요. 동생 흥부에게 재산을 적당히 나눠주고, 제비만 안 건드리면 됩니다.” “고정 수입도 없으면서 자식을 10명이나 낳은 흥부가 뭘 잘했어요?” 동화와 현실 간의 차이 또한 서로 배치되는 모순인데, 똑똑한 사람들은 이 부분을 단박에 파고든다. 맹목적으로 택일하지 않으며, 각 인물의 장단점을 바라보며 나름 해결책을 제시한다.

30대 이상의 국민들은 역대급 인기 사극 ‘허준’을 기억한다. 역경을 극복하며 명의로 성장하는 과정이 인간승리 그 자체였다. 학업을 위해 TV를 금지했던 가정도 허준만큼은 허락해줬다. 한의대 입시 경쟁률이 치솟았고, 모두 허준 보느라 거리에 사람이 없었다. 전광렬은 MBC 연기대상을 받는 등 매우 인기가 높았다.

허준(전광렬) vs 유도지(김병세). 둘 중 하나를 고르라 하면 보나마나 허준 압승이다. 그런데 드라마 종영 직후 특집 영상에서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둘 중에 남편감으로 누가 더 적합한가?’ 설문조사가 있었다. 여기서 시청자들이 당황했다. 드라마는 남 얘기라 강 건너 불구경하면 되지만, 내 인생은 내 문제라 심사숙고 해야한다. ‘너라면 어떡하겠냐’는 질문 하나로 드라마와 현실이라는 모순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결과가 나왔는데, 현실에서는 유도지가 압도적으로 이겼다. 허준은 올바른 길만 가느라 아내를 너무 고생시켰고, 말이 안 통해 답답하다는 이유였다.

마찬가지로 교사들이 난감해하는 질문이 ‘선생님이라면 어떡하시겠어요?’이다. 인간의 도리, 미래를 개척하는 지식, 인생의 방향을 열심히 가르치지만, 정작 몸은 물욕을 찾아 움직인다. 말과 행동이 모순이라는 걸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기에 저 질문을 받는 순간 몸이 굳는다. ‘선생님은 흥부 자식 되고 싶어요, 놀부 자식 되고 싶어요?’ ‘허준과 유도지는 서로 친구하면 안되요? 왜 맨날 싸워요?’ 더 날카로운 2차 질문이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하나…. 이걸 해결하는 방법은 교사용 지침서에도 안 나와 있고, 임용고사 문제집에도 없다. 임용 최종 면접에서 ‘그럼 면접관님은 어쩌시겠어요?’ 맞질문 했다가는 삐빅~ 탈락이다. 아무튼 난감한 질문이 들어올 때 해결책은 없지만 살 방도는 있다. “진도 나가자.” 아니면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다. 김경모 현대청운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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