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리(東部里)는 언양읍 15개 법정동리의 하나이다. 마을 이름을 이와 같이 동·서·남·북부라고 이름 한 것은 큰 공청(公廳)을 중심으로 방위를 나타낸 것이다. 이곳은 옛날 언양군 상북면 지역으로서, 정조 때 북부리에 속했다가 고종 때 동부리로 갈라졌고, 1914년의 지방행정구역 개편 때 동부리에 노동동을 합해 언양면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옛 언양현, 언양군의 청사가 있어 읍내·군내·성내·읍리·관리(官里)·관문(官門) 등으로 불리어 왔다.

 동부리 124번지 일대에는 옛날 대밭(竹林)이 동서로 길게 뻗어 있었기에 대밭걸이라 하였다. 1914년 언양군이 울산군에 병합될 때, 서부리 30번지에 있던 언양군수 관사(官舍)로 쓰던 언양면 사무소를 1933년에 이곳 대밭걸의 일부를 정리하여 신축하고, 옛 동부리 소재 면사무소 대밭은 그대로 두었다. 대밭은 남아 있었으나, 1975년 죽림개화병(竹林開花病)으로 대가 모두 시들어 죽게 되어 대지(垈地 집터)로 변하더니, 1981년 불하(拂下)되어 지금은 도로와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처럼 언양에는 옛날에 소나무와 대나무 숲이 울창하였기에 조선 세종 조에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홍여방(洪汝方)은 언양의 장대한 풍경을 다음과 같이 읊기도 했다.

 "소나무 숲 대나무 숲이 천 가호(家戶)를 감추고/산수는 반석을 휘감아 한 고을을 만들었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대(竹)는 여물고 바르고 속이 비어있어 곧은 속성이 네 가지 있음을 밝히고 그것은 곧 수덕(樹德), 입신(立身), 체도(體道), 입지(立志)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하였다. 대나무는 그 우아한 곡선과 날씬한 형은 현자의 상(象)인 동시에 예지의 모습을, 숙인 댓잎과 속은 종종 겸손에 비유되고 덕을 겸비한 모습으로 상징된다. 매화, 난초, 국화와 함께 사군자(四君子)로 일컬어져 왔고, 사시사철 푸르고 곧게 자라는 성질로 인해 대쪽같은 올곧은 절개와 심지를 나타내며, 지조 있는 청렴한 선비정신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인식되어 왔다.

 울산 태화강 일대의 십리대숲이 전남 담양군의 죽녹원(대숲공원)을 모델로 복원·생태공원 조성과정을 거쳐 조만간 시민들의 쉼터로 등장할 전망이다. 옛 언양현의 무성했던 대숲이 오늘에 와서 새롭게 재현되는 것 같아 자못 설레고 기대된다. 울산시 담당자는 이를 위해 담양군을 직접 방문하여 "대나무 자원연구소"의 자문을 얻고, "죽녹원"도 현지답사 했다 한다. 담양은 대나무 숲 오솔길을 개발하고, 바닥에는 녹차를 심는 등, 죽림욕과 녹차의 은은한 맛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하여 호평을 받고 있는 고장이다. 마침 울산지방이 담양과 위도가 비슷하다 하니 대나무의 생육도 번창할 듯싶은데, 십리대숲이 태화강을 따라 길게 늘어서 울산12경으로 장관을 이룰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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