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규홍 경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지난했던 장마와 폭염, 태풍이 지나가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코로나는 수그러들지 않고 더 기승을 부린다. 그런데 또 정치권에서는 연일 친일 부왜 화두로 또 시끄럽다. 티브이를 켜면 우울한 뉴스만 가득하다.

그런데 친일이 뭔가. 친일의 친(親)은 아버지가 자식이 오는지 나무 위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다. 친은 좋은 개념으로 ‘친구’ ‘친족’ ‘친하다’와 같이 쓰이는 단어다. 우리는 뭐도 함부로 모르고 한자어를 써왔다. 친일과 친미는 일본과 미국에 친한 관계로 긍정적인 의미의 단어다. 나라 잃은 시대 일본에 붙어서 우리 민족을 괴롭히고 광복을 방해하고 자기의 부귀영달을 위해 일본(왜)에 붙어살았던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는 부왜(附倭)라는 말이 있다. 이미 부왜라는 말은 선인 학자들이 써 왔던 말이다. 부왜역적이란 말이다.

여기서 부왜에 대한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소위 친일의 틀로 정국을 전환하려고 한다는 말은 굳이 할 필요도 없지만 진정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고자 하는 뜻에는 굳이 반대할 것까지는 없다.

문제는 현 정부가 바라보고 있는 언어적 식민관과 제국주의의 언어적 침략에는 너무나 무관심하다는 거다. 무관심이 아니라 아예 언어관, 언어 의식이 없는 정부이다. 반미를 외치고 자주 평화와 자주민족주의를 외치면서도 현 정권은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공공언어나 정책, 사업 언어들이 친미 친제국주의의 말들이라는 것을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그들도 잘 모르는 말을 써 놓고 무슨 사업이니 무슨 정책이니 흐뭇해한다. 온 나라가 해괴한 외래어로 되어 있다.

뉴스에서 대통령이 나와 ‘그린스마트스쿨’사업을 하면서 2025년까지 16조원을 들인다고 했다. 교육 마당마저도 이와 같은 알지도 못하는 외래어를 마구 써제껴놓고 친미라고 하면 벌떡 화를 내고 친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난리니 이 정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언어관과 언어정책의 발새 때만도 못 따라가는 정권이다. 갈수록 공공언어들과 세간의 언어는 친미 제국주의 언어가 우리 한민족 대한민국의 안마당에서 마음대로 설치고 있는데 덩달아 좋다고 같이 춤을 추고 있다. 이 친미식민언어관은 어떻게 할 건가!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고유한 말과 세계가 부러워하는 글이 있건만 우리만 그걸 모르고 생각도 없이 남의 것을 좋아하고 따라다닌다. 좀 심하게 말하면 한국전쟁 통에 코흘리개 우리가 껌 하나 얻으려고 미군을 따라 다닌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이제는 그 굴레에서 벗어날 때도 됐는데도 여전히 자존심도 없는 부끄러운 우리다. 누구를 위한 언어이고 누구를 위한 소통인가.

서양인 하나 없는 곳에, 서양이 하나 관계 없는 일에 온통 영어투성이니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외국인이 하나 안보는 간판이나 공공언어에 굳이 알 수 없는 어려운 외래어를 써야 할까? 누구를 위한 사업이고, 누구를 위한 정책이고, 누구를 위한 소통인가. 그것이 바로 의식의 신식민이다. 소통의 공정, 소통의 평등은 빈말이다. 몇몇만 아는 정보로 그들이 정보를 독점하는 것은 정보의 독재이고 정보의 독점이다.

정국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새로운 정공법으로 강력한 언어정책이라도 펼치는 것은 어떨까? 큰 틀을 바꾸어 보는 것도 해 볼만 하다. 스스로 자신을 업신여기고 부끄러워하는 나라가 무슨 친미나 친일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언어의 식민사관, 언어의 비민주주의, 언어의 반민족주의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길 바란다.

임규홍 경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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