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지난 계절의 흔적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물러가는 계절을 따라 새로운 계절이 다가오지만, 계절의 경계는 구분되지 않는다. 물러가는 계절 속에 다가오는 계절이 숨어있고 다가오는 계절 속에는 지난 계절의 흔적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경계선은 잠재적인 전선이다(켄 윌버). 전선에서 진영은 끊임없이 충돌한다. 그동안 집권세력의 편 가르기로 다양한 수준의 전선이 형성됐고, 다양한 전선에서 국민들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비상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다행히 의사 간호사 편 가르기는 실패로 끝났다.

편 가르기는 광신에 빠진 구성원들의 이성을 조정하고, 도덕적 추론의 동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네편 내편 갈라질 때 감정이 점화되고, 그때 우리의 바른 마음은 기다렸다는 듯이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자신이 인식하는 모든 것에 직관적으로 반응하여 우리의 의식을 변화시킨다. 상대가 아무리 훌륭한 동기를 가지고 수많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도 직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신의 직관을 끊임없이 정당화시키며 항상 나는 옳고 너는 틀린다. 결국 우리는 한낱 패거리로 전락한다(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웅진지식하우스 2019).

어린 시절 동네 형들의 꾐에 넘어가 친하게 놀던 동무와 이유 없이 싸웠던 적이 있다. 우리는 그때 그들의 음모를 눈치 챌 수 없었다. 그들은 아마도 우리의 격투(?)를 동네 개싸움 구경하듯 즐겼을 것이다. 어린시절 뼈아픈 기억 중 또 하나는 동급생 마주보고 뺨때리기다. 이 체벌은 둘이서 마주보고 상대의 뺨을 교대로 때리는 것인데, 처음에는 때리는 시늉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인정사정없이 상대의 뺨을 때리다 어느 한쪽이 울음을 터뜨리고 나서야 중단되었다. 철없이 어렸고 한없이 우둔했던 그때 우리는 이 천인공노할 원시적 체벌의 정당성에 조금도 의문을 품을 수 없었고, 교실의 권력 또한 절대적이었다. 국민을 편 갈라서 서로 싸우게 하는 것이 동급생 마주보고 뺨때리기와 무엇이 다른가. 망치를 손에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는 법이다(마크 트웨인 Mark Twain). 그들에게 국민은 무엇으로 보였을까?

태풍의 위력은 대단했다. 동강난 다리가 복원되고 끊어진 길(道)들이 열리고 있다. 길들은 다시 굽이굽이 단절된 산하를 연결시키며 아침이면 언제나 밝게 빛날 것이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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