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홍가 쌈지조경설계사무소장 울산조경협회 상임이사

1990년 봄 어느 저녁. 기숙사 옆 야외공연장에서 들려오는 기타연주에 이끌려 ‘토레스’라는 클래식 기타 합주단에 가입했다. 알고 보니 타레가의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이라는 유명한 클래식 기타곡이었다. 조경학과 신입생이던 나는 조경학 개론 수업 시간에 ‘알람브라궁전’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알람브라궁전은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 1순위가 되었다.

그로부터 20년이나 지나서야 스페인을 가게 되었다. 여러 여행지를 다녔지만 그 중 다시 가고 싶은 곳을 골라 보라면, 알람브라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너무도 매력적인 도시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를 꼽는다.

꿈에도 그리던 알람브라궁전을 마주한 느낌은 사각의 프리즘 같았다. 외부에서 바라보면 큰 흙덩이같이 투박해 보이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정교한 이슬람 문양의 내부 장식과 빛과 물이 빚어내는 섬세한 색채들이 보석처럼 빛났다. 아랍어로 ‘붉은색’을 뜻하는 알람브라는 그라나다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구릉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했던 무어인들이 본래 군사 요새로 건설했다가 이슬람 왕실의 거처로 사용되었는데, 그라나다를 정복한 이사벨 여왕조차 이 궁전이 너무나 아름다워 부수지 않고 그대로 궁궐로 사용했다고 한다. ‘샘이 있는 안뜰’과 ‘사자의 정원’을 둘러싼 크고 작은 방들이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동쪽 언덕으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사이프러스 길을 10여 분 걷다 보면 측백나무 수벽 너머 헤네랄리페 정원이 있다. 헤네랄리페(Generalife)는 원래 14세기 초에 세워진 왕가의 여름 별궁이다. 세로형 정원의 중앙에 수로를 설치하고 좌우로 분수를 두어 주위에는 정성껏 가꾼 꽃과 담쟁이덩굴이 있다. 산꼭대기의 만년설을 끌어와 수로를 연결해 사시사철 꽃이 필 수 있게 만들었다. ‘물의 정원’의 각종 분수는 순수한 낙차에 의해 물줄기를 뿜어내도록 고안되었다. 사막이 고향인 아랍인들의 물에 대한 애착을 엿볼 수 있는 놀라운 정원이다.

지구의 편에서 보면 인간의 비행이 멈춘 이 시기가 반가운 일이겠으나 여행 마니아들에게는 여간 좀이 쑤시는 게 아니다. 꽃이 만발한 계절에 꼭 다시 와 보리라 했었는데 아쉬운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사진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그날의 온도와 장소의 향기 등 언제라도 되뇔 수 있는 추억이 있어 그나마 감사한 요즘이다.   정홍가 쌈지조경설계사무소장 울산조경협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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