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영 울산시의원

우리 일상이 많이 바뀌었다. 원격 수업을 하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매장과 공공장소에는 마스크를 써야 입장할 수 있고, 밥 같이 먹자며 인사하는 것도 신경이 쓰이고, 날씨 탓인지 손을 자주 씻어서인지 손이 많이 상한 것 같기도 하고, 10여 년 전 신종플루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지 싶은데 하며 우울해지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신종플루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인류는 타미플루라는 치료약을 초기에 보유했고 치사율도 지금의 코로나19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기도 했거니와 지금 정부와는 달리 초창기 이후엔 타미플루만 믿고 방역에 손을 놓고 일상생활을 지속시킨 정부의 방침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코로나19는 아직 치료제도 없을뿐더러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개개인에게 정보가 빠르게 제공되는 스마트기기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전의 과도기 단계에서 겪었던 감염율과 치사율을 신종플루보다 빠르고 압도적으로 뛰어넘고 있다.

게다가 자신이 바이러스의 숙주인지도 모르는 무증상 감염자도 보고되고, 사람이 아닌 타 동물들과의 교차감염 보고도 있으니 연구진들은 이번 코로나19가 에이즈, 인플루엔자, 홍역과 같은 엔데믹(endemic·사라지지 않는 주기적 발병)이 될 것이라는 좋지 않은 예측까지 할 지경이다.

코로나19의 전파력이 무시무시하다는 것은 얼마 전 모 집단이 광화문에서 주최한 집회만 봐도 알 수 있다. 한 자리대 까지 떨어졌던 국내 코로나19의 신규 감염자 수치가 순식간에 세 자리 수 이상으로 오르고 상대적으로 청정 지역이었던 우리 울산도 감염자가 대거 발생했다. 이에 대한 여파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2.5단계까지 올라가 시민을 직접 대면하며 생활하는 소상공인분들을 비롯한 많은 분이 손해를 입고 국가적으로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손실을 보고 있을 정도이니 잠시라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수없이 많은 사람이 더 다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곧 추석이다.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과 설에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이동한다. 당연하게도 코로나19의 대규모 확산이 매우 우려된다. 이에 코레일에서는 KTX 등 열차운행에 더 많은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좌석 간의 거리 두기 예매를 하고 있고 한국도로공사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매장 식사 대신 포장만 가능하게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개인차량을 이용해도 나도 모르게 감염돼서 부모님께 옮기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기도 하고 예전만큼 고향길 가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지난 18일 정세균 국무총리는 “조상님들도 역병이 돌 때면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며 자신을 팔아 이동 없이 안전한 추석을 보내주십사 부탁했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엔 1535년(중종 30년) 4월 역병이 발생해 궁궐 나인이 병들어 죽자 종묘 제사를 지내지 못했다고 적혀있고, 조선 중기 문신 권문해의 ‘초간 일기’에는 1582년(선조 15년) 2월15일 자에서 ‘역병이 번지기 시작해 차례를 행하지 못하니 몹시 송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 후기 유학자 류의목의 ‘하와일록’에는 1798년(정조 22년) 8월14일 마마(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해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정한 것을 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학진흥원이 발간한 연구자료들을 살펴보면 우리 조상들은 역병이 닥쳤을 때 가족이 모여 차례는 물론 기제사도 지내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침 국무총리도 신신당부했고 또 거리 곳곳 명절 인사가 걸려있는 현수막에서도 ‘가족을 만나는 명절보다 가족을 위하는 명절을 만들어 주세요’ 비슷한 문구들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살짝 핑계를 대고 화상통화, 벌초 서비스 등으로 우리 조상들처럼 융통성을 발휘해 이번 역병이 잡힐 때까지 만나 뵙기보다 위하는 명절을 보내면 어떨까.

이미영 울산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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