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으로 마땅히 해야 할 사업
서울중심 사고…지역이기주의 탓
정치계산없이 원칙대로 추진해야

▲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울산이 대한민국에서 다른 도시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인 두 가지를 꼽는다면 단연 바위그림과 중화학공업이다.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와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으로 대변되는 바위그림은 선사시대의 선조들이 남겨준 유산이다. 자동차·조선·석유화학의 중화학공업은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서 울산이 특정공업지구로 선택된 결과다. 울산으로선 이들 두 가지로 인해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적지 않다.

먼저 중화학공업을 보자. 우리나라 근대화과정에서 등장한 대기업의 주력공장들을 모두 갖게 된 울산은 1인당지역내총생산(GRDP)이 가장 높은 ‘부자도시’가 됐다. 하지만 ‘공해도시’라는 오명을 수십년동안 안고 살았다. 경제와 문화의 격차로 인한 정서적 황폐화와 열악한 정주여건도 무시할 수 없는 부작용이다. 국립 환경·문화·복지정책 하나 없이 오로지 공단만 조성한 정부의 무책임과 무지(無知)가 낳은 결과다.

‘공해도시 울산’은 2000년대 들어서야 숨 쉴만한 도시로 거듭났다. ‘생태도시’를 공중의제로 설정, 온 시민이 마음을 합쳐 어렵게 얻은 성과다. 비로소 ‘살기 좋은 도시’로 거듭나나 했더니 문제가 또 생겼다. 산업패러다임의 변화와 더불어 중화학공업의 성장정체가 목을 조여왔다. 산업다각화가 절실하던 시점, 마침 정부가 한국산업기술박물관을 서울에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울산시민들은 서명운동까지 벌여 문화·관광산업의 앵커시설이 될 한국산업기술박물관을 얻어냈다. ‘공해도시’의 대가(代價)로서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첫 국립문화시설이라는 기대감도 잠시, 지난 두차례 대통령선거의 공약으로만 남아 있을 뿐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중이다.

정쟁의 도구로만 활용하고는 정권을 쥔 후엔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를 댄다. 국립문화시설 가운데 경제성이 있는 곳이 몇 개나 된다고. 이해할 수 없는 이유다. 세계가 경이롭게 생각하는 대한민국 산업발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하면서 미래 산업을 예고하는 국립산업기술박물관을 세우자는데, 반대하는 국민은 한명도 없을 것이다. 그 시설이 역사의 현장이나 다름없는 울산에 있어야 한다는데 반대할 명분이 없는 것도 분명하다. 오로지 서울 중심의 왜곡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입으로만 국토균형발전을 떠드는 정부와 정치인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도 따져보자. 암각화 훼손 방지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울산시민의 식수원인 사연댐의 수위를 낮춰야 한다. 암각화가 물에 잠기지 않는다고 영구보존이 되는 것도 아닌데, 정부는 달리 보존방안 하나 마련하지 않고 20여년 동안 사연댐 수위조절만 논쟁거리로 삼아 왔다. 물 부족이 뻔한 울산시민들을 위해 맑은 물 공급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달라는 울산시민을 ‘문화도 모르는 무뢰한’으로 덤터기를 씌워놓고는 하세월이다.

답은 뻔하다. 설령 수년이 걸리더라도 인근 지역의 댐에서 물을 나눠주는 방안만 확정하면 된다. 그런데 눈앞의 표에 매몰된 정치인과 지역이기주의조차 극복하지 못하는 정부는 십수년째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수시때때로 하릴없이 찾아와서 온갖 약속을 다해놓고는 서울로 돌아가면 그뿐이다. 그 사이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등재도 겨우 첫 관문만 통과한 채 유보돼 있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하게 생각하면 정답이 보이기도 한다. 산업기술박물관이나 암각화 보존 모두 울산시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적으로 마땅히 해야 할 당위성이 분명한 사업이다. 따지고 보면 복잡한 문제도 아니다. 공연히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몰고 가서 점점 복잡하게 만들어왔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게 어디 정치로 풀 문제인가. 올바른 답이 눈에 보이는데 정치적 계산이 왜 필요한가. 정부가 나서 원칙대로만 추진하면 될 일이다.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ulsan1@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