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한성 외솔초등학교 교사

해마다 한글날을 맞이하는 소감이 남다르다. 근무하는 학교의 이름이 ‘외솔’이기 때문이다. ‘외솔’은 최현배 선생의 호로, 한글 사랑에 대한 그의 뜻을 기리고자 교명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학교 가까이 ‘외솔기념관’이 있으며, 바로 위의 고택에서 최현배 선생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최현배 선생은 1894년 조선이 천지개벽했던 갑오경장 시기에 태어나 격변의 시기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한글을 통해 개혁을 이루고자 하였다. 특히, 1910년 경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조선어강습원에서 주시경 선생으로부터 3년간 한글과 말본(문법)을 배우면서 한글 연구와 실천을 시작하게 되었다.

최현배 선생의 빛나는 업적을 꼽는다면 바로 1929년부터 출판이 시작된 <우리말본>이다. 그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 부임할 당시에는 우리말과 우리글을 가르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본어로 교육학, 철학 등을 가르칠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백낙준 박사가 연희전문학교의 문과부장으로 오게 되면서 최현배 선생과 뜻을 같이하여 우리말과 우리글을 가르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또한 그는 1925년부터 1926년까지 ‘조선 민족 갱생의 도’라는 논문을 수십 차례 신문에 연재하면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새로운 정신을 갖추어야 함을 역설했다. 최현배 선생은 그 출발을 우리말 찾기라고 보았고, 이러한 활동이 저술로 이어져 <우리말본>이 출간되었다.

<우리말본>은 주시경 선생이 쓴 <국어문법>(1910)의 뒤를 이으면서도 현대 한국어에 대한 과학적 체계를 확립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말본’을 말소리갈(音聲學), 씨갈(詞論), 월갈(文章論)로 나누어 상세히 분석하였다. 후대의 우리말 사전도 대부분 <우리말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그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일제강점기 때에도 한글을 지킬 수 있었고, 광복 후에도 한글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최현배 선생은 조선어학회의 <큰사전>은 물론,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에도 크게 이바지하였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용 ‘말본’ 책도 직접 썼다. 우리나라가 70여년 넘게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통역관 없이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도 바로 최현배 선생의 공로라고 할 것이다. 논란이 있었지만, 한글 가로쓰기, 한글 전용 등을 주도적으로 끌어낸 것도 그의 업적이다.

최현배 선생의 업적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중에서 그가 6·25 전쟁 중 부산으로 피난 가면서 설명한 우리말 존중에 대한 5가지 개념은 오늘날 우리가 되새겨봄 직하다.

첫째, ‘깨끗하게’로 외래어를 쉽고 아름다운 토박이말로 바꾸어야 한다. 둘째, ‘쉽게’로 누구나 알 수 있게 말을 써야 한다. 셋째, ‘바르게’로 표준된 발음으로 말하고 맞춤법에 맞게 글을 써야 한다. 넷째, ‘풍부하게’로 말은 사람의 사고의 폭을 넓히고 정밀하게 한다. 다섯째, ‘너르게’로 쉬운 말과 글을 자유롭게 사용해 모든 사람이 바로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아쉽게도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외솔기념관이 휴관 중이다. 하지만 한글날을 맞이하여 ‘한글이 목숨’이라고 하였던 최현배 선생의 한글 사랑과 업적을 떠올리며, 고마움을 느끼고 한글에 대한 자긍심을 가졌으면 한다.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올바른 한글 사용을 실천하며 한글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키우길 바란다. 윤한성 외솔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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