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 위로 안겨준 노래 ‘테스형’
가사 놓고 갑론을박 학문적 분석 대신
주인공 애잔한 삶에 집중할 순 없을까

▲ 박정환 재경울산향우회 사무총장

이번 추석은 참으로 특이한 명절이었다. 민족의 대명절이라며 가족의 중요성을 한 목소리로 내던 매스컴들도 귀향을 자제하자는 대열에 함께 서 있었다. 그 와중에 KBS에서 관객도 없이 두 시간 넘게 열창을 선사한 나훈아 콘서트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지난달 ‘테스형’에게 박수치는 글(9월13일자 태화강 칼럼)을 썼던 필자도 그 콘서트를 보고 들으며 톨스토이의 장편 ‘전쟁과 평화’ 한 장면을 떠 올렸다. 니콜라이 로스포프가 엉뚱한 자존심 때문에 많은 재산을 날리고 근심 속에 귀가하는데 집안에서 들리는 여동생 나타샤의 맑고 밝은 노래를 들으며 위안을 받고 함께 합창하는 장면이다.

그 반향의 울림이 꽤 컸던 탓인지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 중에는 여성학 학자 강남순 교수의 쓴 소리도 있었다. 학창시절 시(詩)를 분석한 참고서 느낌으로 읽은 강교수의 긴 글은 나훈아의 신곡 ‘테스형’에 좌표가 찍혀있는 바, 우선 ‘발화의 주체를 남성으로 설정하는 것을 자연적으로 만든다’로 시작한다. 그의 말처럼 ‘형’은 ‘발화의 주체(speaking subject)’를 남성으로 한정하는 단어일까. 1970~80년대 남녀공학에서는 여학생들이 남자선배에게 형이라는 호칭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썼다. 나훈아의 노래를 선호하는 팬들을 60~70대라고 가정한다면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요즘은 졸업식장에서 듣기 어려워졌다는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되는 졸업식노래를 부르며 남녀학생이 함께 울먹였던 세대이기도 하다. 이렇듯 호칭은 시대와 세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강교수가 예를 든 ‘하느님 아버지’라고 기도하며 남자를 떠올리기가 어디 쉬운가. 국제회의에서 여성이 ‘의장(Chairman)’팻말이 놓인 자리에 앉은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것이나 ‘스포츠맨쉽(sportsmanship)’이 여성 운동선수에게도 해당되는 것과 같다.

두번째는 ‘나이에 따른 위계적 관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강화하고 지속한다’고 지적한다. 형이라는 호칭이 반드시 ‘위계적인 관계’를 생성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 이외수의 소설 ‘언젠가는 다시 만나리’에서 30대 중반의 ‘사내’는 20대 중반의 ‘청년’에게 공손하게 ‘형씨’라고 부르며 줄곧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필자도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 중 두세 살 많은 이들에게서 ‘박형(兄)’으로 불리며 수십 년간 우정을 나누고 있다. 2인칭과 3인칭의 당신이 다른 뜻인 것처럼 형이라 불렀다고 ‘발화의 주체’가 듣는이의 동생이 되는 ‘유사가족관계(類似家族關係)’가 형성된다고 보기는 더욱 어렵다.

셋째는 ‘호명되는 사상가들을 사적인 존재로 전이시켜 버림으로써, 그들의 사상적 유산이 지닌 중요한 보편적 함의를 외면하게 한다’고 했다. 나훈아가 소크라테스를 형이라 부른다고해서 갑자기 ‘사적인 존재로 전이’가 될 것이라는데 동의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가 콘서트 도중 언급한 ‘유관순 누나’도 70대 나이의 그에게 체화된 익숙한 호칭일 뿐 강교수가 고쳐 언급한 ‘유관순 열사’로 부른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프랑스 패션의 거장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은 1966년 네델란드 출신의 화가 몬드리안의 유명한 그림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을 그의 의상콜렉션에 과감히 사용하여 화폭 속에서만 머물던 몬드리안의 예술세계를 상업적으로 확장하였다. 서로 배타적으로 보이던 두 영역의 결합은 이후 피카소, 앙리 마티스, 반 고흐의 명작들이 캔버스를 떠나 그릇이나 생활용품까지 그 폭을 넓혀갔다. 피카소의 그림이 넥타이에 매달려 있다고 그 거장의 예술적 함의가 폄하되거나 외면되었다고 볼 수 만 있겠는가.

자주 찾지 못하는 아버지 산소에서 기댈 곳도 의지할 이도 없는 한 가장의 애잔한 삶을 노래한 것으로 들으면 되는 대중가요 즉 흘러가는 노래란 뜻의 유행가인 것을. 미증유의 역병으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추석명절을 보내는 와중에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준 원로가수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의 신곡 ‘테스형’을 다시 응원한다.

박정환 재경울산향우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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